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인간은 동물 터전을 앗아갔다

올해 초,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가슴 뭉클한 교감을 그린 <워낭소리>가 독립영화 사상 최초로 백만 관객을 넘어섰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다른 독립영화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황윤 감독이 만든 <어느 날 그 길에서>입니다. 이 영화는 지리산을 둘러싼 도로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우리들의 무관심속에 무의미하게 죽어 가는지를 충격적으로 보고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다큐의 소재인 '로드 킬'은 지리산 주변 도로만이 아니라 전국의 10만km에 이르는 모든 도로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제가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는 주남저수지 주변 길 위에도 가끔씩 도로에 누워 있는 동물들이 보입니다. 족제비, 멧비둘기, 개구리, 두꺼비, 뱀……. 인간이 저들의 편리를 위해 만든 도로에서 정작 그 땅에서 태어나 그 땅에서 생활하던 그 땅의 주인들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숨진 족제비.
그 현장은 인간 중심적인 자연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근대 이후 산업자본주의사회가 연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그렇게 인간만을 생각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옛날 우리네 조상들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뜨거운 물을 마당에 부으면 흙속의 생명이 화를 입을까봐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몸이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세상 모든 것들도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생활하며 나오는 것들도 대부분 자연으로 그대로 돌려보냈습니다. 인간이 자연과 그 자연의 일부인 뭇 생명들의 도움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 따라서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다 우리의 생명을 이루는 일부라는 생각을 생활 속에 녹여내며 수천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저는 아침저녁으로 차를 타
 
   
 
고 주남저수지 옆 도로를 지나갑니다. 늦가을부터는 시선을 하늘로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저 먼 시베리아에서 찾아온 뭇 생명들이 하늘 한 켠을 줄지어 날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을 거두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져 시선을 아래로 돌렸을 때 그만 그 길에 누워있는 족제비와 멧비둘기와 참새와 개구리와 두꺼비와 뱀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애써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려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최재은(창원대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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