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에는 집안잔치가 있고 동네잔치가 있다. 일을 벌여 크게 잡으면 국중잔치가 되기도 하고 국제잔치가 되기도 한다. 전국 규모 잔치를 나라잔치라는 말로 붙여 볼 수 있는데 ‘나라’에 국가 또는 정부라는 개념이 스며들어서 전통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은 ‘국중’이라는 말이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잔치에는 사람이 끓어야 한다. 집안잔치를 잘하고 있으면 동네사람까지 담장 안을 넘겨다 보다가 얼쑤 덩실 함께 어우러지게 된다. 동네잔치를 잘하고 있으면 나라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기웃 기웃 마음을 쓰다가 때로는 버스를 타거나 열차를 타게 된다. 거꾸로 국중잔치를 벌여 놓고도 잔치를 잘못하면 나라에서 사람이 오는 것도 아니고 동네 사람이 팔둑을 걷어 부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잔치가 되고 만다. 국중잔치를 벌일 때는 착실한 동네잔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개천예술제는 1회부터 9회까지는 ‘영남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그러다가 10회부터 오늘의 이름인 ‘개천예술제’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축제에는 제의(祭儀)가 중요한데 ‘단군과 관련된 제의를 전제로 한 축제가 진주에서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축제의 정체성 논의가 생겨났다. 정체성 논의는 이론으로 무엇이 어떠하니 무엇을 정립하자고 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제의든 놀이든 하나의 끈을 붙들고 모일 수 있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가령 영남예술제 시절 사람이 끓을 수 있었고 그 이후 상당기간 사람들이 진주가는 열차표를 다투어 끊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정부 수립 후 궁핍했던 문화예술의 환경 때문에 오는 현상이었다고 냉정히 말해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되는 점은 영남예술제라 했을 때 진주라는 고도가 ‘영남’이라는 말에 가장 친근하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영남의 좌우도의 한 축이라는 역사성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시 <팔벼개>에서 “영남의 진주는 / 자라난 내 고향 / 돌아갈 고향은 / 우리 님의 팔벼개” 라고 썼다. 작품 속의 화자는 진주 출신 기생이다. 동네가 갖는 정서나 역사성이 소중하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잔치에 대한 시각이 되었으면 한다.
도내에 문학 전문축제나 기념행사가 뜻 있는 이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문학 에너지의 드러냄이나 저변 확대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 중에서 국중잔치로 벌이면서 동네잔치를 바탕에 깔지 않는 예도 있고, 국중잔치에 걸맞게 프로그램도 짜고 동네 사람을 홀대하지 않는 예도 있다.
후자의 예로 ‘김달진문학제’를 들 수 있다. 요란한 캐치프레이즈도 있는 것이 아니면서 지방 해안의 작은 도시에 알맞는 내실을 다져 나가는 것이 보기에 좋다.
최근 삼천포에서 ‘박재삼기념사업회’가 발족되고 첫 행사도 조용히 치른 것을 뒤늦게 알았는데 열악한 여건에서도 한 빼어난 한국의 서정시인을 잊지 않고 기념사업을 편다는 일은 눈물겹다. 시인이 일생을 한국적 정서와 한(恨)과 허무의 늪에서 살다 갔지만 그가 일생동안 노래했던 “나뭇잎에 바람이 와 불고 거기에 햇빛이 반짝이는” 경이를 기념사업의 뜻에서 다시 우리는 읽게 된다.
그러나 기념사업회를 움직이는 이들은 시인의 위치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시인이 국중인물이면 기념은 국중잔치의 격에 맞추어야 하고 동네 인물이면 동네잔치의 격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박재삼은 두말할 것 없이 50년대 후반 이후 우리나라 서정시의 움직일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국중인물이다.
기념사업회의 고뇌가 거기에 있을 터이지만 국중잔치라 하여 돈을 많이 들이고 크게 빗돌을 세우는 데에 있지 않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조용히 작은 행사를 벌이더라도 동네사람들이 모이고 그 일이 넘쳐나 나라 곳곳에서 삼천포로 오는 비행기표나 버스표를 끊는 이들이 늘어나게 하면 된다.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오는 11월 ‘토지문학제’가 열리게 된다는 소식이다. 확실한 동네잔치가 되면서 국중잔치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끓어서 섬진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이들도 낚싯대를 내버려 두고 사람들 틈에 섞이어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정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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