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공의 처지에서는 미자하의 그런 행동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오, 인정스런 아이야. 이토록 맛있는 복숭아를 모두 먹지 않고 제 구미를 참으며 나에게 넘겨주다니! 너야말로 정말 사랑받을 행동만 골라서 하는구나!”

먹다 남긴 음식을 군주에게 넘기는 일은 중죄에 해당되었다. 그렇건만 영공은 착하고 기특한 아이라며 미자하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미자하의 아름다운 용색(容色)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살이 드러나고 피부는 꺼칠해졌으며 목소리도 탁하게 변하면서 걸음걸이에도 활력이 없어졌다.

시들해졌다. 영공은 미자하가 보기도 싫어졌다. 그 정도가 아니라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전날에 있었던 미자하의 행각들이 소록소록 기억되었다.

“괘씸한 놈! 저놈은 일찍이 과인을 속이며 내 수레를 훔쳐 탔었지! 어디 그 뿐이던가! 먹다남은 복숭아 찌꺼기를 군주인 나한테 먹인 죄를 범했었지(餘桃之罪)! 흉악 발칙한 놈이다! 이제까지의 죄를 한꺼번에 몰아 중벌에 처하겠다!”

한비자는 이 대목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다.

‘군주에게 사랑을 받으면 그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들 것이고, 미움을 받으면 죄를 얻어 더욱 멀어진다. 고로 간언하고 유세하려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잘 살핀 후에 해야 할 일이다.’

한편 한(韓)나라에서는 진나라 군사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전전긍긍했다. 어전회의가 열렸다. 한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한나라는 미약하고 진나라는 강한 나라요. 이런 위태로움을 일시라도 모면하려면 진왕이 기리는 한비를 사자로 보낼 수밖에 없겠소.”

한비는 한편 한나라에서 등용되지 못한 한을 품고 있었다. 왕은 단 한 가지의 계책도 들어준 일이 없었다.

‘좋다! 진나라로 가자. 진왕은 야망이 크며 현명한 인물이 아닌가. 내 실력을 믿고 필히 나를 크게 등용할 것이다. 특히 내 친구 이사가 나를 적극 추천해 준다면 일은 훨씬 순조로울 것이다!’

한비의 짐작은 옳았다. 진왕은 한비의 내방을 크게 기뻐하면서, 중용할 계획을 내비치며 그를 위해 매일 잔치를 열었다. 결국 한비의 중용은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었다.

이 때 가장 더럭 겁을 내고 있는 인물은 이사였다.

‘이건 얘기가 다르다! 한비가 중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는 한비의 재능을 너무나 잘 안다. 얼마나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가. 내 재주가 한비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 아닌가. 진왕도 그의 재주를 감지하고는 홀딱 빠져서 국정 전부를 맡길 심산인 것 같애. 이건 곤란하다. 한비의 출세는 곧 나의 파멸을 의미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