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회원동·창원 봉곡동 기사식당 골목뱃속 든든해지는 밥집 마음 든든해지는 사랑방세 끼 찾기도 하는 손님 하루도 문 닫지 않는 주인

맛이 좋고, 푸짐하고, 심지어 값도 싸다! 이 세 가지가 바로 '기사식당'이 갖춘, 손님을 위한 덕목(?)이다. '어느 지역이든 기사식당만큼 부담 없이 맛있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곳도 없다'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같다. 최근에는 손님이 줄고, 문을 닫는 집도 늘었다지만, 마산과 창원에서 여전히 '기사식당'을 찾을 수 있다. 기사 몇 사람에게 물으니 "창원에는 봉곡동과 사림동, 마산은 회원동과 합성동 등에 기사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을 볼 수 있다"고 일러줬다. 창원은 봉곡동, 마산은 회원동에 있는 기사식당 골목을 찾아가봤다.

◇기사식당은 쉼터이자 활력소 = 매일 바뀌는 국이나 밑반찬은 쉽게 질리지 않게 해준다. 무엇보다 집에서 해먹는 반찬같이 익숙함이 묻어난다. 공기에는 밥을 꾹꾹 눌러 담아주고, 찌개를 끓이는 뚝배기는 작아도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와 정성만은 듬뿍 담긴다. 그래서 먹고 나면, 당연히 속은 든든해진다.

"밥 좀 더 주이소~" 먹고 싶은 만큼, 밥이나 반찬을 축내도(?) 된다.

기사식당이 주로 골목에 자리 잡은 건 근처에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다. 한결같이 '기사님 환영합니다' '기사님 어서 오세요'와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기사들에게 기사식당은 단순히 밥 퍼주는 집이 아니라 쉼터다. 배가 닿아 사공이 쉬는 나루터 같기도 했다.

요즘에는 창원 용지동민의 집이나 경남도청 구내식당을 찾기도 한다. 2500~3500원에 먹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기사식당만큼 편안한 곳도 없단다. 손님들 약속에 늦지 않거나 출근 시간 맞춰준다고, 그렇게 남을 위한 하루를 살다가 다시 시동을 걸려고 쉬어간다. 바둑판이 올려진 평상이나 양치질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한 집도 있었다. 집처럼 드나든다는 거였다. 동료와 함께 회포를 풀면서 적적함을 달래기도 한다. "오늘 상필이 왔다 갔습니꺼?" 하고 주인에게 동료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점심시간 창원 봉곡동 기사식당 골목 앞에 택시가 줄줄이 늘어섰다.
그늘에 홀로 앉아 담배 한 개비 물거나 서너 사람이 모여 담소를 나눈다. 일상과 세상살이에 얽힌 이야기다. "아래 조인성이 문산 공군교육사령부에서 나온다고, 태국 아가씨가 마산역에서 내 택시 탔다 아이가.(웃음)" "차에 택시 스티커 살짝 떨어졌는데, 새로 한 개 붙일라면 우야면 되노?"

기자라고 밝히자 쓴소리도 한 마디 붙였다. "골프 치는 양반들이 권력 있는 사람들 아니오? 약한 사람 나무라지 말고, 그런 사람 비판 좀 하소. 그래야, 정직한 펜대 아니긋소?"

◇창원 봉곡동 골목 = 창원 봉곡동에는 봉곡중학교에서부터 창원컨트리클럽으로 들어가는 진골길 입구까지 기사식당이 줄지어 있다. 컨트리식당, 행운기사식당, 밥묵고 합시다, 창마기사님식당, 성미기사식당, 청솔기사님식당.

반지하가 대부분인데, 그 중 하나인 명성기사식당에 들어가서 고추장불고기를 시켜 먹었다. 여름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미역 냉국과 함께 애호박무침, 오징어젓갈, 오이소박이, 양배추 쌈 등 밑반찬이 나왔다.

1988년부터 택시를 몰아온 김영희(48) 씨는 무엇보다 7~8가지나 되는 밑반찬 때문에 기시식당을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차를 대고, 김 씨에게 "행님~" 하고 인사하던 이모(37) 씨는 "아무래도 기사식당 삼겹살이 최고지예~"라고 말했다. 계속 도로를 달리다 보면, 코나 입안에 먼지가 많이 껴 해질 무렵 자연스레 찾게 된다는 거다.

여기 어떻게 기사식당들이 모이게 됐을까. 김 씨는 봉곡중학교 옆에 있는 '다오리'가 가장 먼저 생겼고, 이후 다른 집들이 들어섰다고 했다. 이 씨는 "그 집에 돼지국밥 안 맛있나?"라고 덧붙였다.

   
 
 
'다오리' 배원자(60) 사장은 1989년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창원에 기사식당이 한 군데도 없었지예. 고기 한 근 2400원, 가스 1통 8000원 할 때 시작했습니더. 지금은 주위 기사식당들로 붐비지만,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다니까예. 창원 기사 분들이 안 도와줬으면, 완전 망했을 낍니더."

'다오리' 모든 메뉴는 3000~4000원이다. 값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저래 받고 남는 게 있습니꺼?"라고 물으니 "서민들 밥 무로 오는데, 서민 장사해야 안 되겠습니꺼~ 예전에 기사들이 날 도와줬는데…. 내가 쪼매 헌신하고 말지. 그만둘 때까지 안 올릴라고예."

◇마산 회원동 골목 = 마산 회원동은 마산 무학여고 근처에 기사식당이 모여 있다. 대림기사식당, 한일기사식당, 성원기사식당, 영빈기사님식당, 중앙기사님식당 등이 있다. 창원과 다른 점이 보였다면, 도다리매운탕, 멸치쌈밥, 물메기탕 등 해물을 쓴 메뉴가 있다는 거다.

스무해 넘게 택시를 해온 이갑환(50) 씨는 하루 세 끼 모두 이곳에서 때운다고 했다. "사람들 많이 만나고. 후식으로 커피도 한잔하면서 뭐, 대화 창구지예." 중앙기사님식당에서 마른 대구를 넣고 콩나물, 무와 끓인 대구된장을 먹었다. 고등어·조기 구이, 멸치볶음, 어묵조림, 국물김치 등이 밑반찬이었다. 오후 5시, 이른 시간임에도 돼지갈비를 구워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지금쯤 먹어둬야 나중에 집에 가려는 손님들 데려다 줄 수 있지예."

   
 
 
중앙기사님식당 백순남(53) 사장은 지난 추석과 설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새벽 6시 가게에 나오는데, 가끔 기다리는 기사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분들 위해서 하루도 쉬면 안 될 것 같아요."

마산 회원동에서는 한일기사식당이 가장 오래됐다고 했다. 4년 전, 식당을 맡은 임정희(51) 사장은 1983년쯤 생겼다고 전했다. 한일기사식당의 허름해 보이는 간판이 그 세월을 짐작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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