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모진 가난 이겨낸 어머니의 힘사고로 남편 잃고 아들 셋 키우려 국수장사…친정부모 도움에 염소불고기 입소문 나 가업으로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라는 우리 옛 속담이 있다.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한 나라의 실업률은 일부 가정의 해체까지 몰고 오는 경우가 있으며, 부모가 자식 양육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현실에도 이르게 한다.

하지만,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난에 안주하려는 생각이 부끄러울 뿐이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부모는 역경과 고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은 물론 자식의 미래를 책임질 필요가 있다. '문산제일염소불고기' 창업자 이아이자(67) 할머니가 걸어온 인생 이야기는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살기 어려웠던 1970년대 초 두부장사 하는 남편을 만나 아들 셋 낳고 살던 이아이자 할머니는 갓 서른을 넘은 젊은 나이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말았다. 남편의 유산이라고는 아들 셋과 남에게 갚아줘야 할 빚뿐이라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빚도 갚아야 하고 자식 셋을 데리고 입에 풀칠도 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서 당시 이 할머니는 자식 앞에 당당한 어머니가 되고자 스스로 다짐하며 3살짜리 막내아들을 등에 업고 장삿길에 나섰다.

그러던 중 1974년 아들 셋을 데리고 진주 문산읍 삼곡리 현재 제일식당 자리에 가게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주인은 이 할머니가 가지고 온 보따리를 문 밖으로 내동댕이치며 "자식 셋이나 딸린 당신에게는 세를 줄 수 없으니 나가라!"며 문전박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집주인에게 "만약 내가 가게 세 하루라도 밀리면 그냥 내쫓아도 좋으니 믿어달라"고 사정해 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국수 팔아 집세를 주고, 자식들 공부까지 가르치며 힘들었다고 밝혔다.

어느 날, 시집간 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던 친정아버지가 염소 한 마리를 잡아와 이것으로 요리를 만들어 장사해 보라고 권해 염소 불고기를 팔게 됐다. 이후 염소 불고기 집으로 탈바꿈했다.

문산제일염소불고기 집의 염소양념불고기. /김영복 교수
하지만, 막상 염소 불고기를 해보니 염소 특유의 노린내가 나서 조리하기조차 쉽지가 않았다. 이 할머니는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중 "소풀(부추)이 배앓이나 이점(이질)에 좋으니 염소 불고기에 소풀을 넣어 봐라!"라는 말을 듣게 됐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그이의 꿈에 나타나 바로 이 말을 남겼다는 거다.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고 용기가 절로 났단다.

그래서 지금도 염소 불고기를 먹을 때에는 양념이 스민 고기에다가 부추를 한가득 덖어준다.

염소 불고기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차츰 손님들은 전국에서 몰려들고, 염소에 대한 상식과 염소 불고기 요리에 나름의 비법도 생기기 시작했다.

억척으로 일궈낸 가업인 만큼, 큰아들 하수만(44) 씨와 막내아들 하성철(39) 씨는 어머니 대를 이어 가업을 2대째 키워가고 있다.

(왼쪽부터)2대 큰아들 하수만 씨, 큰며느리 최양미 씨, 창업주 이아이자 할머니, 막내아들 하성철 씨.
이 할머니가 30여 년간 터득한 건 '손님 입맛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라는 믿음이기 때문에 큰며느리 최양미(45) 씨에게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이 깃든 손맛이 중요하다고 늘 잔소리처럼 당부한다.

'잊지 않고 우리 집을 찾아온 단골손님들도 음식 맛에 실망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하라'는 당부도 마찬가지다.

'문산제일염소불고기' 집이야말로 어머니의 힘이 일궈 자식에게 물려준 훌륭한 가업으로 3대, 4대,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염소양념불고기 1만 8000원(1인분). 진주시 문산읍 삼곡리 1272-5번지. 055-761-7020.

/김영복(경남대 산업대학원 식품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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