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방경찰청이 지난 5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개최한 ‘생활질서확립 도민결의대회’를 보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도경차원에서 9월 한 달을 ‘생활질서 확립의 달’로 정해 엉망인 기초질서를 회복해 보겠다는 생각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런데 경찰이 생활질서 확립을 위해 다른 업무는 제껴둔 것 같아 염려가 앞선다.
요즘 지역일간지의 인터넷 독자투고란을 보니 9월 들어 유난히 월드컵과 기초질서를 강조한 경찰들의 계도성 투고가 도배되어 있고, 5일의 행사에는 경찰서 당직을 위한 최소한 인력만 남겨 놓고 경찰들을 행사에 동원하는가 하면, 각급 학교 학생들 6000여명까지 동원했다고 하니 주객이 바뀌어도 열두번은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의 인력만 남은 경찰서는 분명 업무의 공백이 있었을 것이며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은 수업에 차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3만 5000명에 달하는 참가자가 일시에 대회장에 모이면서 일대의 교통질서 또한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김영삼정부 시절 ‘세계화’라는 구호가 갑자기 등장하더니 세계화 없이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떤 기억이 있다. 국민의 이목을 모두 세계화로 집중시켜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 남는다며 영어공용화 주장도 하고 금융과 농산물시장도 개방하고 주제에 맞지 않게 OECD에 가입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IMF였다. 경제위기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세계화라는 구호가 우리의 눈을 가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정부에서 경찰은 월드컵을 들고 나왔다. 본연의 업무을 떠나 전시성행사 내지는 역량 이상의 대회를 준비하면서 경찰은 정말 이 대회를 통해 생활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한낮 더운 열기속에서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 연사들이 질서확립을 외치는 연설을 들으며 참가자들이 진정 생활질서 확립의 각오를 했다고 보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민을 너무 이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생활질서의 확립은 대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질서를 위반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먼저일 것이다. 생활질서 위반이 모두 국민의 탓인 것처럼 치부하는 경찰의 사고방식도 문제거니와 월드컵을 대비하여 대대적인 행사와 언론플레이를 벌이는 태도도 문제다. 국민은 감시와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동반자이다.
쓸데없는 데 정력과 예산을 낭비하여 불신을 자초하지 말고 경찰 본연의 일을 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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