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뻐꾸기 소리 한 번 제대로 안 들었는데 날씨는 한여름으로 치닫습니다. 눈부신 신록 아래서 모란꽃 송이에 기쁨을 싣고 시를 읊었던 김영랑의 '찬란한 슬픔의 봄'은 이제 무더운 여름으로 노래해야 할까 봅니다. 아열대화 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기후변화는 우리가 자라면서 느끼던 계절의 생생한 감각을 무디게 하고 당황스럽게 합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꽃씨름하는 오월인데 아이들은 개울가 물놀이가 더 즐거워지는 날이 되었습니다. 실개천 여울목에 머리 헹구던 수초들이 때 아닌 피서객들에 놀라서 멈추겠습니다.

물장난치며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너풀대는 검정말 이야기 해주려니 시큰둥합니다. 옛날에는 뜯어 햇볕에 말려 반찬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그제야 신기한 듯 요모조모 살핍니다. 돌멩이 위에 붙은 해캄도 관찰하고 돌 틈 사이로 숨어드는 미꾸라지도 몇 마리 쫓으며 수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줄기 가운데를 스펀지처럼 비우고 물을 정화시키는 갈대와 고마리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희들 이름만큼이나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네?"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너도 나도 풀들을 따서 이름을 묻습니다. "얘는 여뀌, 얘는 미나리…. 어, 어. 저기 소금쟁이도 있다."

   
 
 
한 아이가 골풀을 길게 뽑아들고 왔습니다. 속이 비어서 신기하고 질겨서 신기하다는 아이에게 어릴 때 미꾸라지·메뚜기를 잡아서 아가미에 꿰어 들고 다녔다는 말부터 제멋대로 자란 골풀을 뽑아 풀각시를 만들었습니다.

골풀은 주로 전국의 산야지 습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입니다. 원주형의 원 줄기가 길게 뻗은 비늘 모양입니다. 4~5월이 되면 녹황색 꽃이 피어서 미끈한 줄기에 마디가 생기는데요. 그 마디에다 메뚜기나 미꾸라지 아가미를 꿰어서 들고 다녔지요. 그래서 물건을 꿰는 데 쓴다 하여 '궤미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답니다. 소녀들에게는 감꽃 목걸이를 만들 때 줄로 사용하여 감꽃이 필 때 쯤 되면 물가의 골풀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세 갈래로 땋아서 줄을 만들어 썼고 왕골풀은 잘 갈무리해서 돗자리를 만들어 쓰기도 했던 우리 민초들에게는 요긴하고 친근한 풀이랍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껍질을 벗겨내면 국수가락 같은 하얀 심이 있는데 그것을 뽑아서 말린 것을 '등심초'라하여 약으로 썼습니다. 또 줄기에는 다당이 함유되어 있으며 뿌리에는 사포닌 성분이 있어 전초가 약재로 유용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려서 달여 먹으면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화기를 내려주며 지혈·이뇨·편도선염 등을 다스려 줬다고 합니다. 특히 뿌리는 '신장결석'을 녹이는 데 효험이 있다 하니 민간요법으
   
로 한 번 써보면 좋을 듯 합니다. 줄기 5g정도에 물 700ml를 넣고 달인 액을 반으로 나누어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풀섶 곳곳에 수없이 자라는 여러 생명들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오월입니다. 산과 들이 물오르듯이 우리의 몸 역시 싱그러운 자연이므로 푸르고 싱싱합니다. 그 푸름을 함께 나누며 저 혼자 피고 지는 잡초들에게 이름 하나 불러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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