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황금연휴에 차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가로수 중에서 하얀 꽃이 핀 나무를 볼 수 있다. 무슨 나무일까?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면서 입하다. 입하(立夏), 해마다 입하가 되면 핀다고 입하나무(立夏木)라고 부른다. 멀리서 보면 하얀 쌀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오래되고 큰 나무는 나무 전체가 큰 밥그릇에 쌀밥을 고봉으로 가득 담아 놓은 듯 보인다고 이밥(쌀밥)나무라고 부른다.

밥그릇에 밥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듯한 이팝나무, 창녕군 대지대지초등학교 옆 마을에서 찍은 모습이다. 보리도 익어가고 모내기 준비를 하지만 정작 지금은 먹을 것이 없는 5월, 산나물도 많이 자라 세져서 먹지 못하고 보리도 다 익어가지만 아직 익지 않아 먹을 수 없어 정말 배고픈 보릿고개가 바로 이 시절이다. 배고픈 시절에 얼마나 쌀밥을 먹고 싶었으면 쌀밥나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지만 대체로 밥태기나무, 쌀나무라고 부른다.

마을 어귀에 '쌀밥' 닮은 이팝나무 심어 기우제 지내

해마다 입하가 되면 핀다고 입하나무라고 불리는 이팝나무. 하얀 쌀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큰 밥그릇에 쌀밥을 고봉으로 가득 담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제공/박성현(우포생태교육원)
배가 고픈 보릿고개에 피는 꽃들은 먹는 이름이 많다. 조팝(조밥)나무, 까치밥, 밥티꽃, 며느리밥풀꽃, 박태기나무(밥태기) 같은 이름에서도 우리의 배고픔을 볼 수 있다. 배부른 요즘 사람들 눈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나무에 앉은 것처럼은 보여도, 쌀밥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팝나무가 쌀밥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것처럼 꽃이 피면 풍년이 오고, 드문드문 꽃이 피면 가뭄이 들고, 꽃이 잘 피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요즘 들판에는 못자리가 한창이다. 이팝나무가 필 때 못자리를 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비와 물이다. 가뭄이 들어 이팝나무 꽃이 잘 피지 못하면 당연히 못자리와 모내기 할 물이 없어 한 해 농사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 이팝나무를 심어놓고 지성으로 잘 보호하며 풍년을 기원하며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올렸다.

경남에도 이팝나무가 멋진 곳이 여럿 있다. 김해에 가면 이팝나무 천연기념물이 두 그루나 있다. 주촌리 이팝나무가 천연기념물 307호이고 신천리 이팝나무가 185호이다. 양산 신전리에도 이팝나무 천연기념물이 있다.

거제 장승포 덕포동에도, 창녕군 대지초등학교 옆 마을에도 멋진 이팝나무가 있다. 남해 물건 방조림에도 지금 하얀 이팝나무가 한창이다. 합천 오도리 이팝나무도 경남에서 가장 멋진 이팝나무 중 하나일 것이다.

창녕군 대지면 대지초등학교 옆 큰 이팝나무는 아주 예쁘게 잘 피었다. 이를 보면 흉년이 들 것 같지는 않다.

소쩍새 소리, '소쩍 소쩍=흉년''솥쩍다 솥쩍다=풍년'

이팝나무 꽃을 보고 한 해의 농사를 점치는 것처럼 자연의 생태를 보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것이 여럿 있다. 요즘 시골 마을에 가면 밤마다 소쩍새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창원이나 마산 도심의 산 가까이 있는 곳에서도 밤이면 소쩍새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소쩍새 소리는 '소쩍 소쩍' 2음절로 우는 소리와 '솥쩍다 솥쩍다' 3음절로 우는 소리로 나눌 수 있다. 소쩍새가 소쩍 소쩍 2음절로 울면 흉년이 들고 솥쩍다 솥쩍다 3음절로 울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개그맨 심형래의 그 유명한 유행어 '소쩍쿵 소쩍쿵'도 3음절이다. 올해 계속 2음절의 소쩍새 소리만 들리는 것이 이팝나무의 예언과 달리 가뭄과 흉년을 예고해서 불안하다. 심형래 감독에게 "띠리리 리리리"를 부탁해야 할까?

소쩍새
흉년이 들면 도토리가 많이 열려 산짐승 굶어 죽지는 않게 해 준다는 자연의 섭리를 확인하게 되는 가을이 될지? 아니면 모든 것이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을 증명하게 될지 올해 날씨가 기대된다.

안동대 임재해 교수의 연구를 살펴보면 이런 민간의 믿음을 속신(俗信)이라고 한다. '겨울에 대나무 잎이 마르면 다음 해 사람이 많이 죽는다', '솔순이 많이 죽으면 그해 사람이 많이 죽는다', '소나무가 죽으면 청년들이 죽는다', '소나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할아버지 할머니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민간의 속신이 있다.

소나무나 대나무는 사철 푸른데 가뭄이 나면 가장 먼저 표가 나는 것이 소나무와 대나무이다. 지금도 온 산이 신록인데 지난겨울 지독한 가뭄으로 산마다 여기저기 말라죽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볼 수 있다. 이런 믿음을 자연 생태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민간 속신(俗信)이라고 한다.

자연 생태와 사람의 흥망성쇠가 함께 한다는 공생적 세계관인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매미 등 민간 속신·문화 연관물 많아

'매미를 잡으면 가뭄이 온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벌을 받고 재앙이 따른다는 것을 일깨워줌으로써 생명을 쓸데없이 잡지 않도록 한 것이다.

안동대 임재해 교수의 <민속 문화의 생태학적 인식>이라는 책을 보면 생태 모순을 깨치고 생태학적 인식에 눈을 뜰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진정한 인간해방은 자연해방과 함께 간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당대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은 조상의 생태적 지혜와 슬기를 지금의 위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정대수(마산 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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