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거두 운보 김기창 화백이 지난 23일 오전 9시 35분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집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14년(호적은 1913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7살 때 후천성 농아가 됐으나 넘치는 정열과 예술적 투혼으로 이를 극복하고 한국회화의 대가로 우뚝 섰다.

김 화백은 17살 때 이당 김은호 화백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아 이듬해 제10회 조선예술전람회에서 <판상도무(板上跳舞)>가 입선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해방 한해 뒤 평생의 반려이자 화우(畵友)였던 우향 박래현과 결혼한 그는 수차례에 걸쳐 부부전을 개최하는 등 금실을 과시했지만 1976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만년을 외롭게 지냈다.

김 화백은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독자적 예술영역을 개척해가며 2만여점의 작품을 남겼으나 1996년 자신이 창립한 후소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뇌출혈로 쓰러져 그동안 긴 투병생활을 해왔다.

한국전쟁 때 동생들과 헤어진 그는 지난해 11월의 제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때북에서 온 동생 기만(基萬·72·공훈화가) 씨와 50년만에 병상해후를 해 민족분단의아픔을 또다시 실감케 한 바 있다.

대표작은 <정청> <군마도> <가을> <갓 쓴 예수> <흥락도> <문자도> <점과 선 시리즈> 등.

유족으로는 아들 완(完·52)씨와 딸 현(玄·54·미국 거주), 선(璇·49·미국 거주),영(瑛·45·수녀·세례명 아나윔) 씨 등 1남 3녀. 북한에는 여동생 기옥(75·의사) 씨와 남동생 기만 씨가 생존해 있다.

빈소(☎(02)3410-3151~3)는 삼성의료원에 마련되어 있고, 장례는 27일 오전 9시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원로시인 구상 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와 예술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이에 앞서 오전 8시에는 운보가 오랫 동안 살았던 서울 성북동자택을 잠시 들르게 한다. 장지는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있는 운보의 집이다.

한편 운보 김기창 화백의 기념사업을 추진할 운보문화재단이 내달에 설립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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