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
봄기운과 겨울 바람이 내내 실랑이를 벌이는 한 주가 흘렀습니다. 겨울보다 더 춥다는 엄살도 나옵니다. 어디 목련꽃 봉오리만 했겠습니까? 밤새 꽃샘바람에 얼어서 갈색으로 변해버린 꽃송이들을 보면서 찬바람이 더 얄밉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온 산야에 가득합니다.

지난주는 환경교육문화센터(EECC) 생태강사들과 의령 한우산에 올랐습니다. 산기슭 양지쪽의 쑥 순은 이미 다 자라 국거리로는 늦은 듯한데, 산은 아직 깨어나지도 않고 나무들은 겨울입니다. 그 속 메마른 풀숲 아래서 새싹을 돋우는 꽃들을 찾아 헤매는데 막 꽃대 내민 얼레지와 원추리 새순이 우리를 반깁니다.

중턱 양지에는 개복수초 꽃무리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햇빛 아래 일렁입니다. 그 모습 앞에서 봄의 경이에 빠져 숨죽이기도 했고, 현호색 보라꽃빛과 샛노란 복수초 꽃잎을 보며 또 자연의 위대한 작품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찔레 넝쿨이 유난히 엉킨 논두렁 아래서 나풀나풀 새순을 내밀고 흔드는 머위 밭을 만났습니다. 한 잎 따 올리니 향내가 코를 찌릅니다. 봄나물이라면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 이 머위는 음식이라기보다는 명약에 들어가는 식물입니다. 3~4월이 되면 논둑이나 산기슭 양지 쪽에서 아기 손바닥 같은 잎을 펼치며 새 순이 돋습니다.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4~5월에 피는 꽃은 별로 예쁘지도 않을뿐더러 색깔도 녹황색으로 잎 색깔과 톤이 비슷합니다. 꼭 절구공이 같은 꽃이 피고나면 잎과 줄기가 쑥쑥 자랍니다. 이 머위에는 그만의 독특한 향기가 있어서 그 향을 즐기는 사람들은 봄에서부터 가을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채취해서 먹을 수 있는 요긴한 식물입니다.

어린 순은 나물해서 먹고 자라서 줄기가 굵어지면 그 줄기는 찜의 재료나 나물해서 먹기도 하고 넓은 잎은 쌈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가을이 돼서 세어진 줄기는 껍질을 벗겨서 된장이나 간장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귀한 우리 풀이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한방과 민간에서는 어린 꽃봉오리를 '관동화'라 하며 종창·안정·보신·건위·식욕 촉진·진정·이뇨 등을 위해 약재로 쓰기도 했고 전초와 뿌리도 풍습·진해·거담 등에 다른 한약재와 처방하여 요긴하게 썼다고 합니다. 요즘은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 머위 전초의 즙을 짜서 매실 몇 개를 갈아서 계란 흰자와 잘 저어서 마시면 평생 중풍을 앓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른 봄에 싹이 트고부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주고 가는 머위의 삶은 우리 인간에겐 구원 같은 존재지요. 그래서 꽃말이 '적선'이랍니다. 요즘 같은 어려운 때 온갖 시름에 몸과 맘이 상하기 쉬울 텐데 들판으로 나가 머위 순 따다가 나물해서 드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연과 머위가 우리에게 주는 위대한 선물 아닐까 합니다. 또 그 힘으로 머위처럼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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