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나와서 집에 심지 않는다는 왕버들.
봄이 와서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집에 심으면 안 된다고 한다. 심지 말라는 나무를 심자니 기분이 찜찜하고, 심지 말라는 이유를 물어보면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느티나무, 팽나무(포구나무), 잣나무, 녹나무, 버드나무, 은행나무, 동백나무, 회화나무, 능소화는 집에 심지 말라고 한다. 이런 나무를 심지 말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여인의 지조·절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대부 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복숭아꽃.
집에 복숭아를 심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왜 예쁜 복숭아꽃이 피고 맛있는 복숭아가 열리는데 심지 말라고 하는 걸까? 복숭아는 신선이 먹는 과일이고 신령스러운 나무여서 요사스러운 기운을 쫓아내고 잡스러운 귀신을 몰아내는 힘이 있는 나무라고 한다. 복숭아는 귀신을 쫓기 때문에 제사상에도 올리지 않는다.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조상신이 제삿날 무서워서 집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여인의 지조와 절개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대부 집에서는 도화살, 도색 잡지에 나오는 복숭아 도(桃)자를 멀리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정원에서 복숭아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산과 득남을 기원하며 후손이 번창하는 것을 상징하는 대추 열매.
대추나무도 심으면 안 된다는 분이 있는데 반대로 대추나무를 심어둔 집도 많다. 왜 대추나무를 집에 심지 말라 했을까? 대추나무하면 도장 만드는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먼저 떠올린다. 양기가 강한 대추나무는 귀신이 무서워 달아난다고 한다. 묏대추는 가시가 있어 귀신을 쫓는다고 한다. 대추나무도 복숭아처럼 제사지내는 집에서 심지 말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대로 대추를 심는 집은 대추를 예찬한다. 결혼식 폐백할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 치마에 대추를 던져주며 다산과 득남을 기원한다. 강한 양의 기운을 가진 대추열매는 아들을 상징한다. 열매를 많이 맺고 꽃이 핀 곳에는 꼭 열매가 맺혀 후손이 번창하는 것을 상징한다. 제사를 모실 때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 순서로 상을 차리는데, 대추는 참 헷갈리게 하는 나무이다.

너무 커서 집안에는 어울리지 않는 팽나무.
느티나무와 팽나무(포구나무)도 집에 심지 않는다. 마을마다 동제를 지내는 신성한 나무를 집 안에 심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연을 숭배하며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서낭당 신목이고 우주목인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집에 심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키가 크고 그늘이 많아 집에는 적당하지 않고 특히 태풍이나 바람의 피해 때문에 키가 아주 큰 나무는 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버드나무도 귀신이 나와서 집에 심지 않는다고 한다. 옛 어른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비오는 날 밤에는 도깨비들이 버드나무 아래서 춤을 추고 논다. 100살 넘은 오래된 버드나무는 비오는 깜깜한 밤에 도깨비불이 나온다. 능수버들의 처진 가지는 깜깜한 밤에 보면 초상이 나서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을 닮았고 귀신같다고 해서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심지 않았다. 집에 심더라도 하수구(수채 구멍)를 뿌리가 막아서 심지 않았다. 화류계에 나오는 버들 류(柳)자는 집안 여인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심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처진 버들가지는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것이다.

꽃 지는 모양이 목이 떨어지는 것 같아 선비들이 싫어했을 듯한 동백.
은행나무, 회화나무, 능소화는 왜 일반 백성의 집에는 심지 못하게 했을까? 은행나무는 공자 나무라 해서 향교나 서원에만 심었다. 지금도 오래되고 큰 은행나무는 향교나 서원이 있던 곳을 알려준다.

회화나무는 학자나무라고 높은 벼슬에 오른 집안만 심을 수 있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심는 기념식수라 하겠다. 시골 명문가 회화나무는 그 집안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담장에 핀 아름다운 능소화를 일반 백성 집에 심으면 잡아다 경을 쳤다고 한다. 대갓집 담장에만 심는 능소화는 중국에서 사신단을 통해 들어오면서 귀하게 대접받은 양반나무라고 할 수 있다.

잣나무와 녹나무도 집에 심지 않는다. 잣나무와 녹나무는 독특한 나무의 향기가 있다. 요즘 하는 말로 아로마 향이라고 할까? 그 독특한 향이 귀신을 쫓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안에서는 심지 않았다.

아름다운 동백을 집에 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백나무는 꽃잎이 떨어질 때 꽃 전체가 한 번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역모죄로 목이 떨어지는 모습이라 선비님들에겐 싫었던 모양이다. 한 번 역모죄를 뒤집어쓰면 자손 대대로 조정에 출사를 할 수 없었던 양반들에겐 몸서리쳐지는 꽃이었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제사 지내는 집에는 조상신을 쫓는 나무를 심지 마라. 여인의 지조와 절개를 훼손하는 나무를 심지 마라. 신목이나 우주목을 심지 말아라. 신분에 맞는 나무를 심어라는 이야기가 된다. 올해는 우리 집에 어떤 나무를 심어 볼까?

/정대수(마산 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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