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어린 시절 우리 집엔 내가 읽을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 다섯 남매를 먹이고 가르치기에 급급했는지 부모님은 한결같이 책을 좋아하는 자식들을 두고도 남의 집에 흔히 있는 전집 한 질 사주지 않으셨다.

산으로 들로 쫓아다니길 좋아하며 자치기, 고무줄 뛰기, 공기놀이 등등 거의 놀이의 달인 수준으로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 심지어 방학이면 아침밥 숟가락 놓자마자 뛰쳐나가 점심밥 먹으러 오란 고함에 잠시 들렀다 다시 뛰쳐나가면, 어둑어둑해져서야 돌아오길 방학 마지막 날까지. 여름이면 물놀이에 겨울이면 썰매 타기로 요즘의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마음껏 뛰어놀았던 그때였지만 그래도 책에 대한 갈증만은 채워질 수 없는 빈 공간이었나보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곤 했던 그 시절 친구 집은 나에게 시골 구판장, 햇볕 잘 드는 평상과 같은 역할이었다.

또래들이 생각하기에 참 잘 놀았던 친구로 여겨졌던지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언제나 많은 시간을 함께 놀고자 했던 친구들을 뒤로 하고 "잠깐만", 또는 "조금만"을 외치며 그 집의 책들을 탐닉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 아니라 나를 키운 오 할쯤은 친구네 집에서 읽은 책들이었다.

그때 지금처럼 도서관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 시절 내가 태어난 창원은 흙먼지 풀풀 날리던 시골. 그 당시 '도서관'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촌놈이었던 데 비하면 참 출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집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두 군데, 차 타고 10∼20분 거리쯤에는 무려 네 군데나 도서관이 있다. 바야흐로 도서관도 골라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들 책값도 아끼고 책 읽는 습관도 기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기르는 좋은 교육장인 도서관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저렴교육비에 비해 다양한 양질의 수업이 있어서다.

   
 
 
아직은 손이 가는 둘째아이를 미술과 구연동화 두 가지 수업에 들여보낸 토요일 오전 두 시간은 나에게 자유 그 자체이다.

핑계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귀했던 책이었음에도 지금은 클릭 한 번에 주문해둔 것을 여러 가지 일상에 밀려 제대로 읽지 못할 때가 많으니, 책들에 둘러싸여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도서관이 있어 참 다행이다!

/장은주(38·프리랜서 통·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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