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쪽 띠 숲을 헤매지 않아도 쑥순이 제법 토실합니다. 벌써 쑥국을 상에 올리는 주부들도 입맛 도는 봄나물 이야기로 웃음이 낭자합니다.

힘겹게 겨울을 이긴 월년초·다년초들이 겨울의 자리를 털고 잎을 세우는 분주한 한낮에는 우리들의 겨드랑이도 가렵습니다. 섣불리 얇은 옷 입고 나섰다가 꽃샘바람에 재채기 꽃만 만발해서 돌아오는 봄날입니다.

겨울을 이긴 월년초들이 더 달고 맛있는 이유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찬바람에 맞서 견디기도 했지만 땅심 깊숙이 뿜어나오는 온기에 온 몸을 붙이고 낮디 낮게 엎드려 수도 정진한 인내의 시간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달맞이꽃이나 보리뺑이 같은 풀들을 로제트형이라고 부르는데요. 땅에 바짝 붙어 땅의 온기를 맡으려다 보니 장미꽃잎 모형으로 잎을 지그재그로 눕히면서 납작 붙어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런 풀들에 비해 오늘 소개하는 배암차즈기는 눈구덩이 얼음덩이 속에서도 기하나 죽지 않고 파릇파릇 무성하게 겨울 논둑을 지키는 풀입니다. 그래서 겨울에 더욱 잘 볼 수 있는 풀꽃인데요.

어른들은 흔히 '곰보배추', '문둥이배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파리 형상이 올록볼록 자잘한 엠보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지독한 추위를 이기는 풀이라고 '독쟁이풀'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사람도 여러 고난을 잘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이 훌륭하듯이 풀들도 질기고 독하게 추위를 이긴 것들이 더 좋은 약효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암차즈기는 오래된 종기를 치료하는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옛날 할머니는 머리에 난 기계충이나 허벅지 살 깊은데 난 종기를 치료할 때면 한겨울 추위를 견딘 배암차즈기 뿌리와 잎을 찧어서 붙이고 계속 갈아주면 상처부위가 흐물흐물 해지면서 안의 고름이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약명으로는 '여지초'라 하여 해독. 살충. 해혈, 토혈, 혈뇨, 복수 찬 데, 인후종 등 치료에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은 문명병의 하나로 난치성 겨울 질환인 천식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하여 많이 애용되는 풀꽃이기도 합니다. 전초 10g에 물 700ml 비율로 넣고 달인 물을 반으로 나누어 아침 저녁으로 마시면 좋다고 합니다. 또 삼사월에 채취하여 5월에 익은 보리밥 나무 열매와 함께 설탕에 절여 효소를 내어 먹어도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5~7월에 자줏빛 자잘한 꽃이 피는데 꽃 모양이 마치 뱀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배암차즈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지금쯤 들판에서 가장 맹렬한 기세로 잎을 키우고 꽃대를 준비하는 풀이 바로 배암차즈기가 아닐까합니다.

당당한 배암차즈기의 겨울나기를 보며 춥다고 안방만 찾다 살이 오르기만 했던 게으른 겨울을 반성해봅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운영위원장·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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