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 낸 독수리와 지켜보는 검둥개.
겨울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매년 고성을 찾아 몽골서 날아오는 독수리의 겨울나기 때문이다. 녀석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면서 본, 경쟁에서 처져 탈진해 쓰러지는 일들도 떠오르곤 한다.

이럴 때는 학교 창고에 데려와 부드러운 먹이를 주며 며칠씩 보살피기도 하고, 먹이 다툼 과정에서 또는 땅에 내려앉다가 전깃줄에 걸려 날개 또는 다리상처 입은 녀석들은 반성수목원 수의사께 보내 치료를 받게 한다. 올해도 이런 일들이 세 차례나 있었다.

며칠 전 겨울나기를 하는 독수리 동태를 살피려고 나갔다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먹이를 많이 확보한 채 유유자적(?) 한 축사 지붕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덩치 큰 녀석들, 밭에 모여서 까치들 괴롭힘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껑충껑충 부딪히며 여유를 즐기는 고만고만한 녀석들, 제법 굵은 소나무에 고고한 학처럼 자리잡고 가끔씩 날개를 퍼덕이며 폼을 잡는 녀석들.

모두 평화를 맛보며 인간이 가까이 다가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들을 대견해하며 축사 뒤로 돌아갔는데 정말 황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뇨처리장에 독수리 두 마리가 빠져 허우적대며 서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안타까움과 난감함이 밀려왔다. 말 못하는 어린 녀석들 얼마나 두렵고 힘든 시간이었을까? 어떻게 저 녀석들을 구출하지?

축사 주인과 의논해 밧줄로 올무를 만들어 독수리 목에 걸어 끄집어내기로 했다. 20분가량 시룬 끝에 탈 없이 구출할 수 있었다. 3미터가 넘는 수렁이라 목에 올무를 걸기도 힘들었지만 8킬로그램 가까운 체중에 올무로 목 통증도 컸던지 5~10분 동안은 물에서 건진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종이포대로 눈을 가리고 올무를 풀고, 또 한 녀석을 같은 방법으로 구출하고……, 10분쯤 후 정신이 든 녀석들은 몸을 힘껏 움츠렸다 폈다. 날개 터는 행동이 너무 빨라 향기로운(?) 분뇨 세례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축사에 있는 검둥이 개 한마리가 구출 시작부터 계속 옆에 있었음을 뒤늦게 느꼈다. 검둥이가 독수리들과 장난치다 미처 날지 못해 빠지게 한 미안함에 같이 있어 준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다 기운을 차린 독수리 녀석이 검둥이가 다가가자 강한 야성을 보여 준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강한 부리를 벌리며 덤벼들 자세에 검둥이는 꼬리를 내린 채 물러선다. 몇 번의 같은 행동과 서로의 동작이 냄새나는 나를 잊게 해 줬다.

언덕으로 오르는 좁은 오솔길로 검둥이가 독수리를 쫓아내는 모습에, 그 길로 껑충거리며 올라가는 독수리의 뒷모습에서 흐뭇함을 느낀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만족하며 생태계의 서열을 순응하는 삶이 부러울 뿐이다. 인간들보다 더 힘든 겨울철새와 독수리의 겨울나기에 적은 나눔과 베풂을 함께 하기를…….

 

/김덕성(환경생명을 지키는 교사 모임 전 전국 회장·고성 철성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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