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별미를 원한다면 닭보다 오리

"오리는 닭보다 맛이 떨어지고, 특유의 냄새도 있어 비리다." 오리 예찬론자들이 들으면 참 섭섭할 말이다. 최근에는 오리를 맛보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맛있는 음식도 늘 먹으면 싫다'는데, 복날 개장국이나 삼계탕을 대신해 오리탕 등 신종(?) 보양식을 찾는 사람도 있다.

한때 오리를 닭보단 못한 걸로 여기기도 했다. 오리가 야생에 가까워 환경이 더럽다는 이유다.

그러나 옛 문헌을 통해 알고 보면 이렇다. <신약본초>는 "한약재, 황토, 유황 먹인 오리는 해독 보원이요, 불로장생의 약이 된다"고 했고, <동의보감>에는 "오리는 고기, 기름, 알 등 모든 부분이 약으로 사용돼 결핵성 늑막염, 만성신장염, 이뇨작용, 해독작용에 좋은 식품"이라고 적혔다.

검은깨 넣어 만든 오리흑숙, 고소하고 깔끔한 맛 백숙 못지 않은 영양

오리흑숙을 접시에 옮겨담는 진주 유황생오리전문점 '다오리' 김미량 대표.
오리는 기름기가 많지만 이 역시 식물성 기름처럼 수용성(水溶性)이라 콜레스테롤도 없고, 고단백 음식이기도 하다. 주로 생고기로 구워먹거나 훈제 또는 불고기 등으로 해먹는다. 오리를 이용해 새로운 별미를 개발·완성해 팔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리흑숙'을 맛보러 진주로 향했다.

◇검은 깨와 오리의 만남 = 유황 생오리 전문점 '다오리' 김미량(47) 대표는 지난달 중순부터 '오리흑숙'을 팔고 있다. 오리 장사를 시작한 지는 1년 정도다. 김 대표는 '오리흑숙'에 대해 "닭백숙에서 발상을 얻어 쌀도 넣고, 찜 모습에 가깝게 만든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냄새나 맛을 볼 때 꺼리는 이들이 많진 않나?"란 질문에 그는 오히려 오리의 장점을 늘어놨다. "닭가슴살은 퍽퍽한 맛인데, 오리는 좀 더 쫄깃하고 담백하다. 직접 먹어보면, 냄새 없이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씹히는 맛이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용압탕(茸鴨湯)이라 불리는 오리탕은 들깻가루를 써서 다양한 약재와 함께 뚝배기로 지글지글 끓여낸다. 반면, 오리흑숙은 들깻가루 대신 검은 깨를 쓴다. 용압탕은 조각낸 오리를 넣지만, 오리흑숙은 한 마리를 통째 삶는다.

오리와 10곡·2근·2실(곡식·뿌리·열매)을 넣어 압력밥솥으로 푹 찌면서 고아낸다. 기본적으로는 백숙과 비슷한 과정이다. 물을 많이 부어 오래 끓이는 것이다. 재료는 인삼, 토란, 밤, 대추, 구기자, 수수, 조, 율무, 흑깨, 보리, 찹쌀, 흑미, 녹두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은 1984년 오리흑숙을 개발해 최근 김 대표에게 전수했다. 김 원장은 "흑숙은 약성이 강한 약재가 들어가지 않고, 비교적 평이한 성질의 곡물이 주재료"라며 "참살이와 더불어 유행한 블랙푸드(검은 깨) 열풍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도 "검은 깨와 오리 맛이 조화를 이뤄 좀 더 고소한 맛을 낸다"고 덧붙였다.

양파장아찌, 매실장아찌, 묵은 김치, 깍두기 등 나오는 밑반찬을 곁들이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 구수한 냄새가 났다. 걸쭉한 흑숙죽을 먹게 되는데, 고기와 함께 한 숟갈 떠보니 백숙과는 다른 맛으로 검은 깨와 고기가 함께 씹히는 맛이 있었다. 닭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니 다소 느끼하지만, 흑숙은 그보단 말끔한 듯했다.

◇1인분씩 해내는 과제도 남아 = 새롭게 선보이는 먹을거리, 오리흑숙은 전형적인 슬로푸드라는 점도 특징이다. 김 대표는 "용압탕은 한 뚝배기씩 손님이 오면 바로 내놓을 수 있는데, 오리흑숙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고 했다. 1시간 이전에 미리 주문해두면 일찍 먹을 수 있다.

또, 한 사람 또는 2~3명 정도가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다. 김 대표는 자꾸 조리해보면서 실용화·대중화 단계를 거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밥이 익으면서 질퍽해지는 일을 사전에 막고, 용압탕처럼 고기를 잘라 한 사람도 먹을 수 있게 양을 나누는 일도 과제"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실험을 거듭하겠다는 얘기다.

이날 김 대표는 콜라겐 성분으로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다는 닭발로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편육을 만들어 시험 삼아 내놓기도 했다. 김 대표는 "오리 혀도 튀겨 봤고, 오리로 담근 술(오리주)이나 오리편육 등도 해봤다. 하지만, 아직은 무리"라며 "유통상 문제와 까다로운 보관, 손이 많이 가는 조리 과정도 함께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리흑숙은 네다섯 사람이 즐기기에 알맞은 양으로 4만 원이다. '다오리'는 진주여고 맞은편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진주 상봉동 839-14번지. 055-743-3289.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