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 아래 사람들은 지친 얼굴로 얘기한다. “바빠 죽겠는데 딴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 하지만 이들에게 “혹시 열정을,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냐”고 되묻고 있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아는 건 없어요 콩나물이 뭔지 음정이 뭔지 몰라도. 나의 벅찬 가슴을 이야기하고플 뿐….(중간 생략) 민석이 형도 종와 형도 우리 같았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노래 하나 위해 숱한 밤 지샜을까 이젠 알아요 음정보다 소중한 건 열정이라 이젠 알아요 진정 우리 부르고픈 만들고픈 노래를.”(글·곡 윤혜숙)



마산·창원지역의 창작모임 ‘개똥이’. 98년 가을 창단돼 3년 동안 맥을 이어오고 있는 말 그대로 음악창작모임. 매달 한번씩 ‘밤’에 만나 한달여동안 습작한 작품을 부끄러운 일기장을 내듯 돌려보고 이야기한다. 창작한다고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생각하면 착각. 현재 7~10명이 꾸려 나가고 있는 ‘개똥이’의 회원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있다. 직업도 간호사에서 회사원, 도서관 공공근로자, 사회운동가 등 가지각색.



그러나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대학시절 노래패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그때 못 다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들은 주로 밤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 연습을 하고 모임을 갖는다. 이들에게 노래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오히려 생업이 노래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그 무엇이다. 직장 때문에 한데 모이기가 힘들지만 공연이 다가오면 시키지도 않은 독학을 하는 열정을 보이며 어느 정도 화음이 맞아 들어갈 때 서로에게 감동을 느낀다.



이 모임을 구상했던 정성훈(33·마창민예총 사무차장)씨는 “개인적인 만족이 강하겠죠.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했는데 사회에 나오니까 아무래도 하기가 힘들죠. 자기가 젊었을 때 하려고 했던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가끔은 회원들이 타지방으로 발령이 나기도 하고 취직이 돼 모임엔 참석 못하지만 모임 날을 잊지 않고 자신이 만든 곡이라며 팩스를 보내올 때면 이들의 모임은 개똥이 즉 ‘반딧불이’처럼 빛난다.



지난 11월4일 마산에서 창단된 ‘사랑샘 밴드’도 조금 서툴러도 즐거운 음악, 하고 싶은 연주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구성을 보면 현직 교사를 비롯해 합창단원, 기업체 대표, 개인사업가, 전문 음악가 등으로 구성된 13명이 뭉쳤다. 이름에 사랑이 샘솟는 밴드라는 뜻의 ‘사랑샘 밴드’로 이들의 뜻을 담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맞게 낮에는 양복을 입고 정색을 하고 다니지만 연습하러 보이는 날은 드러머가 되기도 하고 기타를 튕기는 열정을 내보인다. 밴드라는 이름답게 싱어, 리드기타, 키보드, 베이스기타, 테너·알토·소프라노색소폰, 드럼 등 모양새를 갖췄다. 서로 다른 직종에 종사하면서 바쁜 이들이지만 창단과 함께 매주 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함께 모여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이미 마련했다.



키보드를 맡고 있는 김영문(37·교사) 단장은 “전문 음악인은 아니지만 좋은 뜻으로 창단한 밴드인만큼 음악을 통해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 불우시설에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



또 있다. 지난 96년 창단된 ‘실버재즈 오케스트라’도 중·고교 교사, 밤무대 연주자, 중소기업인 등 40대 아저씨들이 뭉쳐 만든 단체이고, 박철(43·박철 한의원) 원장이 중심이 되어 6~7년간 활동해 온 ‘풍물굿 연구소’도 그렇다. 지금은 잠시 주춤하지만 대학때 풍물패에서 활동하던 박원장이 대학 당시의 열정을 이어가고 싶어 낮에는 병원일을 돌보고 밤이면 마산시 남성동의 연습실에서 신명나게 장구를 두드렸다. 잘 나갈 때는 30여명이 함께 정기공연도 갖고 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다. “우리가 대학다닐 때는 휴교가 많아 제대로 학교를 못 다녔죠. 그렇게 고생을 해가며 익힌 것인데 졸업하고 나니 묵혀 두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지내기는 아까워 힘들게 모임을 만들고 잘 이끌어 왔는데…. 다시 시작할 겁니다”고 아쉬움을 얘기한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밤에는 낮동안 접어둔 노스탤지어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이들은 세상사람들에게 못다이룬 꿈은 없노라고 얘기한다.



젊었을 때를 향수하며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에 젖어 버리기엔 이들의 가슴속에는 놓치기 너무나도 아까운 그들이 하고 싶은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힘겨운 일상을 마치고 나면 ‘잠보다’ 더 달콤하고 ‘사우나’보다 더 개운한,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일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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