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 만날재 오르는 길목 목련꽃 봉오리가 한껏 부풀었습니다. 만삭의 새댁처럼 배시시 웃어재낄 것 같은 봄바람이 간지러운 포근한 날들이 계속됩니다.

한바탕 꽃샘추위가 열었던 꽃마음을 얼려 놓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위축될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것이 봄을 추동하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경제 한파로 스산한데 산야는 분주한 산실입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갈터이고 봄은 희망일 수밖에 없음을 산야에서 깨닫습니다. 가난한 발걸음들이 털어내고 간 등산길 모롱이 오리나무는 벌써 꽃을 피웠고요.

삶터에서 개미처럼 일하던 사람들은 이제 산야에 시름을 풀어 놓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자 지구의 자궁이 땅이라면 봄은 생명들을 세상에 내어미는 산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건강한 산모가 건강한 아이를 순산하듯이 건강한 땅이 건강한 생명들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온갖 개발과 오염으로 지친 우리의 산야지만 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린 숲의 나무들은 생명 푸르고 잎을 피우기 위한 물질 힘찹니다. 가슴 청진기로 물오르는 나무의 숨결을 듣습니다.

힘들다, 어렵다, 곳곳에서 아우성 낭자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봄은 희망의 징후입니다. 더 높이 오르는 것만이 목표인 사람들에게는 낮은 곳에서 소리 없이 피는 생명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성장이 마이너스라서 불안하고 힘든 게 아니라 나눌 수 없는 각박한 마음이 우리를 절망 속에 빠뜨립니다. 지금은 봄처럼 넓고 넓은 지평의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 볼 때입니다.

나누고 연대하고 함께 갈 때 꽃은 열매를 향해 피고 절망은 희망의 꽃봉오리를 맺을 것입니다. 자연의 마음속에 이 난국을 극복해 낼 힘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만나는 이웃아이가 묻습니다. '녹색성장'이 건물에 녹색칠을 하는 것이냐고.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는 책에서 성장과 개발이 우리를 잘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보존이 우리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는 것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탄소 녹색 성장'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어 물어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장과 개발의 구호를 멈추지 않고 저탄소를 말하고 녹색성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지요. 자연의 섭리는 가장 논리적인 이치를 따릅니다. 문명화되고 기능화된 인간의 마음이 자연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 풀과 나무가, 하늘과 땅이, 물과 불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슬픔이 기쁨과,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가, 아이와 어른이 어깨동무할 때입니다.

겸허하게 산야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봄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겨울을 견뎌왔는지 가뭄과 홍수의 위기를 넘기고 어떻게 뿌리를 지탱했는지 자연의 마음에서 세파에서 겪은 실패의 원인을 찾고 그 교훈에 머리 조아릴 줄 알아야합니다.

앞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오는 생명의 탄생과 상생이야기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삶을 통해 풀어내고자 합니다. 문명으로부터 얻은 상처와 온갖 질병들을 산야에서 그 치유의 길을 찾는 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봄입니다. 산책길 작은 화단에서 홀로 피는 목련 꽃 한 송이에 눈길을 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세요. 그 속에서 희고 환한 봄의 출산을 경이롭게 맞이할 것입니다.

/박덕선 운영위원장(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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