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요구 분출

지난해 12월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전·현직 언론인들이 나흘간 천막농성을 벌이며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과 국회내 언론발전위원회 설치를 외쳤다. 또 지난 18일에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성유보·www.internetjournalism.org) 회원들이 하루 종일 1시간 간격으로 각 언론사의 인터넷 게시판을 돌며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온라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터넷 9개 중앙일간지. 오마이 뉴스. 국정신문. 연합뉴스 독자참여 게시판에서 진행된 온라인 시위에는 “신문개혁법(정간법개정안)을 입법하라” “국회에 언론발전위원회를 설치하라” “신문개혁, 실천에 나서라” “조선, 중앙일보는 겸허히 자숙하라” “언론자유를 ‘국민의 자유’로” 등 다섯가지 표준 시위문안과 함께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다양한 요구가 표출되기도 했다.

근래 제기되고 있는 언론개혁 요구는 온라인 시위에서 나타났듯이 언론사 사주를 겨냥해 소유구조개편과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는가 하면 정부에 대해 불공정행위 단속과 세무조사를 벌이라고 압박하고, 언론규제를 담은 법안의 입법화를 국회에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언론계 고질 병폐

언개련과 민언련 등은 △특정인 및 특정 일가에 지나치게 집중된 소유구조 △편집 자율권의 훼손 △불투명한 경영관행 △일부 신문의 독점 가속화 △광고시장의 불공정 거래 △무가지 살포나 경품 제공 등 무질서한 판매시장 △자사 이기주의적 보도 행태 등을 오늘날 우리나라 신문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 이른바 ‘족벌체제’식 소유구조다. 중앙지나 지방지 할 것 없이 신문들은 대부분 사실상 경영권이 사주 1인에 집중돼 있으며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문순)은 이러한 소유구조가 불공정보도를 낳는 온상이라고 지적하며 △99년 홍석현사장(현 회장) 구속 당시 중앙일보가 ‘언론탄압’이라고 반발했던 일 △지난해 총선 때 전남일보가 사주인 이정일 후보의 선거운동에 직원들을 동원하고 이 후보에게 유리한 논조를 펼쳤던 일 △지난해 10월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이 논설위원 기명 칼럼의 삭제를 지시한 일 등을 그 사례로 들고 있다.

김영호 언개련 신문특별위원장(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신문들은 재벌을 향해 황제식 경영이 경제파탄을 불러왔다고 비판하면서 스스로 1인 지배체제를 고집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꼬집었다.

탈세·부당내부거래·특혜대출·편법투자 등도 언론관련 시민단체의 주요 공격대상이다. 이들은 신문들이 정치권력이나 금융권 등과의 거래를 통해 각종 비리의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특혜까지 누리고 있다고 공박하고 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계사 윤종훈씨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으면서도 이자를 갚아나가기는커녕 영업이익을 남기지도 못하는 신문사가 퇴출되지 않는 것은 당연히 특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기사의 왜곡은 필연적이다”고 지적했다.

판매시장이나 광고시장에서 일부 신문의 독과점이 가속화되는 추세에 대해 언론학자들은 그것이 자유로운 독자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 하더라도 다양성이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 일간지 시장에서 이른바 ‘빅3’로 불리는 동아·중앙·조선일보의 매출 비율이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60%대에 머물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70%를 넘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력지들은 본사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무가지 대량 살포와 고가 경품 공세에 나서는 등 과열경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96년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지국이 신문판매를 둘러싸고 살인극을 벌인 뒤 신문들은 ‘과당경쟁을 하지 않겠다’며 규약까지 만들었으나 경쟁의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광고시장에서도 역시 불공정 관행이 횡행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사를 무기로 광고 수주를 강요하거나 반대로 홍보성 지면으로 광고를 얻어내는 것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광고업계 종사자들의 푸념이다.

□ 언론개혁 방향

김대통령 연두회견 발언을 빌미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는 환영할 일이기는 하나 전부가 나서서 언론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자칫 ‘언론 길들이기’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데다 정치적 입장과 언론사간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언개련은 17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간섭하거나 개입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은 것도 ‘음모론’에 기초한 일부 보수세력의 공세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실련, 환경련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해 지난 98년 8월 출범한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신문개혁을 위해서는 제도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가입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공동명의로 지난해 11월 10일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언개련은 제안서에서 “신문기업들은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반영하거나 전달하는 일보다는 신문지면을 사유화해 자신들의 특정한 견해를 마치 지배적인 사회여론인 것처럼 전파해왔다”고 전제한 뒤 “언론의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해 재벌이나 족벌에 의한 신문의 사적 지배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기간행물의 기능 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개칭한 정간법 개정안은 △특정인(특수관계자 포함) 주식소유 30% 금지 △재산상황 신고의무 부과 △편집권 독립의 근거 마련 △독자의 권리침해 금지 △독자위원회 설치 의무화 △정보공개 의무화 △처벌기준 및 과태료 금액 현실화 등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조항은 소유지분 제한 규정이다. 언개련은 “현행 규정은 사실상 대기업에 의한 신문사의 전면적인 지배를 허용하고 있으며 특정인에 의한 100% 지분 소유도 가능하도록 돼 있다”면서 “민주적 여론 형성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신문이 방송과 달리 취급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개련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묶여 있는 언론발전위원회 설치 결의안도 하루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언발위에서 정간법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신문의 판매 및 광고시장 정상화 △신문의 판매 및 광고시장 정상화 △언론인의 전문성 확보 및 언론윤리 제고 △언론 피해 구제의 효율화 등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 정책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에 앞서 신문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에 따라 시행할 수 있는 조치부터 당장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세무조사에 의한 경영 투명화와 공정거래법에 따른 불공정 거래관행 타파는 제도개혁 이전에 당연히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신문 부수를 공개하는 ABC제도 정착 △기사에 의한 협박 등 언론인 비리 철저 단속 △심눈판매 자율규약 준수 △공동판매제의 확대 △특혜성 대출 중단 등도 현실론을 내세우거나 신문사들의 눈치만 보지 말고 관련 부처나 기관 및 단체 등이 의지를 갖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유권자보다는 언론을 더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각 선거구에서 20%의 대중만 언론개혁에 관심을 가져도 언론관련 제도개혁은 당장에 이뤄질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어느쪽이 자신에게 더 영향을 미치는지 저울질 한다. 20%면 당락을 가름하는 표다. 언론인들은 현재의 언론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나 자신이 가진 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시민들의 힘으로 이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

한편 언개련은 지난해 11월 9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불법·부당한 신문 관행에 대한 적극적인 고발 등을 담고 있는 ‘신문개혁 국민행동’ 10대 운동지침을 발표하고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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