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지킨 사공, 그 '한결같음' 그대로

함안 가야읍에서 대산면으로 가다 보면,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지점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그림 같은 누각이 있다. 바로 악양루다. 조선 철종 8년(1857년)에 함안 사람 안효순이 누각을 짓고, 중국의 명승지 '악양루(岳陽樓)'에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편액(扁額)이 보인다. 호사가(好事家)들은 이 정자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면, 중국 후난성 예양시 고적 예양고성의 서문 위쪽에 있는 악양루(岳陽樓)와 마주한다고 한다. 중국 악양루는 강남 4대 명루 중 하나일 만큼 절경이고, 함안 악양루 역시 중국 누각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이 누각에 오를 때에는 '악양루가든' 앞을 가로 질러 바위 사이로 오르게 된다. 비록 지금 '악양루가든'은 현대식 건물로 변했지만, 대를 이어 사공을 하며 민물어탕을 만들어 파는 집이다.

1997년 악양교가 놓이기 전에는 법수면 악양마을과 대산면 양포마을 사이를 흐르는 함안천을 긴 장대 같은 노 젓는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촌극으로 끝났지만, 지난해 논란이 됐던 '처녀 뱃사공' 노랫말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악양루가든'은 3대 박길석(49) 사장의 선친 고 박기종(22년 전 작고) 씨가 생존해 계실 때 학사 뱃사공 집으로 더 유명했다. 고 박기종 씨는 1956년 23살 때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 고향에 내려와 형의 뒤를 이어 나루터에 초가를 짓고 사공으로서 통학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뱃삯을 받지 않고, 배를 태워주는 봉사를 했다. 그래서 '학사 뱃사공'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뱃사공으로 유명했던 할아버지의 비결 고스란히
제철 민물고기로 끓여 비릿함 없고 입에 착 붙어


2대 신수임(73) 씨에 이은, 박길석 사장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 나루에서 뱃사공 일을 하면서 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곳 함안천 하류와 남강에서 잡는 민물고기로 어탕이나 어죽을 끓여 팔았으니 3대에 이어 한자리에서 그 맥을 이어오는 셈이다.

함안천 하류 지역은 수심이 깊고 예나 지금이나 물이 마르지 않아 잉어, 붕어, 메기, 웅어 등 민물고기가 풍부하다. 특히, 낙동강과 남강을 타고 들어오는 많은 어종으로 말미암아 대를 이어 지금까지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 붕어탕, 5월부터 11월까지 숭어회와 잉어찜, 봄은 웅어회, 여름은 은어회 등 제철에 맞는 민물 어종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어죽과 어탕국수는 선대로부터 수십 년 동안 비결이 쌓인 그 맛을 대물림했다.

1대인 고 박기종 씨가 노를 젓던 나룻배.
남명 조식 선생도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경호강 탁영대 너럭바위에서 제자들과 천렵(川獵, 냇물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농사일하는 사람이나 사랑채에 앉아 글공부하는 선비나 더위에 지치는 건 매한가지니 시원한 물가가 그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옛 선비들이 탁족(濯足, 흐르는 물에 발을 씻음)을 즐기며 개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끓이고 수제비 뚝뚝 떼어 넣은 천렵국(냇물에서 잡은 물고기를 넣고 끓인 국)은 복더위를 잊게 하는 최고의 음식이다.

   
 
  2대 신수임 씨.  
   
 
  3대 박길석 씨.  
 
이 집을 찾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언제 가더라도 제철 어종으로 끓인 어탕과 어죽 맛은 민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전혀 없고, 국물 맛이 걸쭉하면서도 얼큰한 게 입에 착 달라붙는다.

우윳빛 나는 붕어곰탕의 진국을 주문해 약간의 소금을 타 마실 수도 있다. 꽃피는 춘삼월에 붕어곰탕 한 그릇 쭉 들이켜 두면, 이후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한결 여름나기가 수월해진다.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루가든'. 055-584-3479.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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