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 신경득 교수 논문 ‘6.25전쟁…’ 분석


우리사회의 최대 금기 중 하나였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사건의 진상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당시 한국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의 책임도 궁극적으로는 미군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신경득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학술지 <사회과학연구>(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정성진) 19집 1호에 발표한 논문 ‘6.25전쟁 초기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을 통해 이같이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 논문에서 당시 형무소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 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실질적인 집행권자는 육군정보국 CIC 방첩대장 김창룡이며, 최종명령권자는 이승만 대통령이었다고 밝히면서, “미군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민간인 학살의 경우에도 50년 7월 13일 이승만이 대전에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한 이후부터 미군은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시기구분론으로 학살 책임을 논할 때 서울~대전 사이의 민간인학살은 이승만의 책임이고, 전주.광주.진주 등에서 자행된 민간인학살은 맥아더의 책임이 된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인천에서 자행된 민간인학살에서는 미 군사고문단이 직접 학살명령을 내린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수원에서도 미군이 직접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대전형무소 정치사상범 학살 현장에 입회.감시 및 사진촬영을 한 것으로 보아 작전권을 이양받기 전에도 학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신 교수는 “전쟁기간동안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례를 맥아더는 보고를 받았으며, 이러한 잔혹한 범죄에 대하여 미군은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묵인하였다는 많은 사례가 발견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이승만의 책임과 관련, “미 국립문서보존소에서 발견된 2급비밀문서 ‘한국의 정치범 처형’에는 50년 7월 첫째주 대전형무소에서 사흘사이에 한국 최상층부의 명령에 따라 정치범 1800여명이 집단처형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바, 여기서 언급된 ‘한국 최상층부’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이도영 박사가 밝혀낸 제주도 경찰국 문서들과 김종필씨의 증언, 50년 6월 25일과 30일 치안국장 장석윤이 내린 상황지시문, 당시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인민보>와 <민주조선>의 보도 등을 종합한 결과 “이승만은 ‘육군정보국CIC’방첩대장 김창룡에게 학살명령을 내리고, 방첩대는 민간인학살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면서 각 지역 방첩대원은 형무소에 파견돼 수감자를 분류하고 경찰을 동원하여 피검자를 학살현장까지 이송, 헌병과 경찰로 하여금 학살을 집행케 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 신 교수는 “당시의 북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미군이 전쟁기간동안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이 지대 안에 있는 민간인의 축출과 사살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많다”면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미군이 설정했다는 ‘안전지대’의 개념과 내용을 제대로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신교수의 논문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노동신문> <민주조선> <조선인민보> <해방일보> 등 당시 북한에서 발행된 신문보도를 실화문학의 한 갈래인 종군실화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다.
신교수는 “당시 종군실화를 분석한 결과 자신들의 관점에서 과장된 표현도 적지 않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밝혀진 민간인학살 사례와 비교해볼 때 상당부분이 사실과 부합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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