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독성을 가진 적조현상이 한국 해안을 강타하고 있다. 정치도 경제도 이 적조 앞에서 무용지물로 가라앉았고, 언론은 연일 확산되는 적조현상과 그 피해에 대한 보도로 하루를 열다시피 한다. 어선은 고기잡이를 포기한 채 벌건 황톳물을 바다에 뿌리지만 남해안에서 발생한 적조는 그 눈물겨운 투쟁에는 아랑곳없이 동해로 서해로 번져나간다.
핏빛 바다, 죽음의 바다라는 극한적인 표현을 보면서 한국 해안이 절멸의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한다.
적조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자연현상이었다. <조선실록>에는 1403년 8월과 10월 경남 거제.기장.고성연안 및 진해만 일대에서, 1412년 순천연안에서, 1423년 거제도연안에서 해수가 붉게 변하면서 물고기가 많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을 전제로 한다면 적조현상은 자연현상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한 일사량으로 광합성작용이 활발하여 조류가 대량으로 번식하고, 무풍상태가 계속되어 해수교환이 없어서 일어나는 자연적 조건 아래서 나타난다.
근자에 들어 적조현상은 남해안을 중심으로 매년 되풀이되며, 그 독성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이런 적조현상을 자연현상으로 봐야 하는가. 적조발생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여기에는 앞서 밝힌 자연현상에 더하여 내륙환경변화에서 비롯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적조는 하.폐수유입으로 질소.인 등 영양이 풍부하다거나, 미량금속이나 유기물질의 작용에 의해 발생빈도가 높고, 더욱 강한 독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거기다 바다와 육지의 가교역할을 하는 연안갯벌파괴는 해양환경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남해안 적조현상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인재로 규정할 수 있다. 육지로부터 유입되는 다양한 유기물질과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온도상승, 해상교역량 증가로 인한 적조생물의 국제적인 이동은 적조발생의 새로운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수는 적조를 발생시킬 수 있는 다양한 유기물질과 중금속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천의 수질관리는커녕 댐을 만들고,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하천 자체를 거대한 하수관로로 만들어버렸다. 해양환경에 있어서 최후의 보루인 갯벌의 파괴는 연안오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적조를 연례행사처럼 만들어버렸다.
적조현상으로 수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적조가 휩쓸고 지나간 가두리양식장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렸다. 엄청난 물고기가 허옇게 배를 드러내놓고 죽어나갔다. 죽은 물고기는 바다에서 썩어 또다른 적조유발요인을 낳고, 이러한 악순환이 매년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어민은 어민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정부는 발생원인규명과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뒤로한 채 피해규모 집계에 바쁘다. 적조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가두리양식장도 연안오염의 대표적인 것이니 어찌보면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가두리양식장에서 죽어나가는 물고기를 볼 때마다 인간의 삶의 방식에 강한 회의를 느낀다. 적조확산속도가 아무리 빠르다한들 물고기의 이동보다야 빠르겠는가. 그러나 가두리양식업자는 적조가 몰려와 물고기가 다 죽을 때까지 그대로 물고기를 가두어 둔다. 양식장 그물코를 하나만 풀어도 그 많은 물고기는 죽지 않고 적조를 피해 우리 연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연안어족자원을 위해 부러 치어를 방류하면서도 가두리양식업자는 자신이 양식하던 물고기를 기어코 죽여버린다.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얼마만한 보상을 받을 것인가에 죽은 물고기가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둔한, 아니 영악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육지에서 사는 인간들이 저마다 적조발생의 원인제공자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오늘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육지의 하천생태계와 수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해양환경오염의 방어막인 연안갯벌을 보전하지 못한다면 핏빛으로 물드는 바다의 재앙은 계속될 것이다. 양식장 물고기가 적조에 죽어 바다를 오염시키고, 다음해 적조발생요인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한국의 연안은 죽음의 바다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진화론에서 바다는 모든 생물체의 고향이다. 바다를 잘 다스려온 민족이 세계문명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내륙지향적인 각종 정책에 의해 바다를 황폐화시켜버렸다. 바다를 잃고, 끝내 땅마저 잃게 될 작금의 내륙지향적 개발정책은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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