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의 바다 너덜 세속 ‘범종’만어석

삼랑진읍 우곡마을 만어산(670m) 들머리에 서면 ‘자성산 만어사’라는 표지석과 함께 ‘한국이동통신 만어산 기지국’ 표지판이 서 있다. 무슨 석재공장을 알리는 돌도 하나 있는데, 일단 실망스런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
등산길이 자갈이나 흙으로 돼 있지 않고 곧장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봉우리까지 4㎞ 정도 된다는 길이 모조리 이러니 풀벌레 소리는 우렁차나 나무와 풀을 벗삼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은 싹 가신다.
대신 자가용차를 몰고 온 사람들은 쉽게 오를 수 있어 좋아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웅장한 철탑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서 있는 모습을 본다면, 아무래도 산에 대해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망은 이것으로 끝이다.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시원하고 호쾌하다는 것. 억산.운문산.가지산과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물결치는 억새 사이로 울긋불긋한 산세가 대단하다고 한다.
또 정상아래 20분 거리에 있는 만어사는 여러 모로 독특한 게 많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있다.
가장 신비한 것으로는 절집 아래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돌무더기. 만어석 또는 종석이라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동해에 있는 용과 고기들이 돌로 돼 내려앉은 것이다. 또 자세히 뜯어보면 돌 하나하나가 머리를 하늘로 쳐든 물고기 같이 생겼다는 말들이다.
대부분 사람 몸통보다 더 큰 돌들이 너덜을 이룬 채 펼쳐져 있는데 두드려보면 범종을 울리는 듯 경쇠소리가 난다. 가만 지켜보면 찾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돌조각 하나씩 들고 두들기면서 신기해하는 얼굴 표정을 짓는다.
스님 말씀에 따르면, 인도에도 이처럼 돌무더기가 늘어선 산이 있다. 만어석 말고도 같은 점이 두 개 더 있는데 미륵전 옆 언덕배기에 있는 돌무더기 틈 사이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은 채 고여 있는 게 그렇고, 천둥 비슷한 소리가 때때로 울리는 것도 닮았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산 위의 기층이 색다른지 3시간 남짓 머무는 동안에도 하늘에서 네 차례나 우렁우렁하는 소리가 들렸다.
만어사의 절집들은 크게 볼만하지는 않다. 대웅전도 그저 그렇고 새로 지은 2층짜리 미륵전도 마찬가지다. 산쪽에 바짝 붙어 지어진 허물어져 가는 옛적 삼성각과, 새로 지은 삼성각도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출입금지 푯말을 붙여놓은 범종루도 그윽한 맛이 나지는 않는다.
반면 미륵전 안에 커다란 바위를 모셔 놓은 게 색다르다. 석가모니 이래 뭇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이 바위 모양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안에 모셔진 미륵 바위는 만어석 가운데 으뜸 가는 바위로, 30년 전 따로 전각에 모시지 않았을 때는 아래쪽 발가락 모양이 뚜렷했는데 지금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지나가는 스님 한 분이 말해준다.
뭐니뭐니 해도 여름 끝무렵과 초가을 무렵 만어사의 가장 빼어난 점은 만어석 위를 오가는 바람.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없는데도 그 이상 시원해 살갗이 시릴 정도다.
“도시락이랑 물통을 챙겨들고 아침 무렵 아이들과 함께 절집을 찾아 들머리 정자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책이라도 한 권 읽으면 딱 좋겠다”는 한 아주머니의 중얼거림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또하나, 특히 콘크리트 등산길에 실망한 사람이라면, 만어석 바위를 맨발로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햇볕을 받은 쪽은 따뜻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바위 같지 않게 푹신푹신한 게 기분이 그만이다. 맨발이 자연물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귀해지는 판에 건강에도 도움되는 산뜻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찾아가는 길

진주역이나 마산.창원역에서 경전선을 따라 기차를 타고 삼랑진역까지 갈 수 있다.
마산역에서 오전 4시 51분과 6시 55분.7시 44분 기차가 있으며 삼랑진까지는 40분 가량 걸린다. 이어서 9시 15분 막차까지 11시 35분과 오후 12시 32분, 낮 3시 20분과 4시 3분, 6시 20분.8시 3분 등의 차편이 있다.
삼랑진역에 따르면, 삼랑진읍에서 만어사 들머리인 우곡마을까지 하루 8차례 마을버스가 오간다. 첫차는 오전 6시 35분에 떠나며 다음은 7시, 그 다음은 7시 45분에 있는데 넉넉잡아 20분이면 우곡마을에 가 닿는다. 삼랑진읍에서 우곡마을까지 거리는 4㎞ 정도.
낮에는 오전 10시와 정오, 오후 1시 20분에 버스가 있고 3시와 5시 20분에도 있다. 나올 때 실수하지 않으려면 우곡마을에서 삼랑진읍으로 나오는 차편을 미리 물어놓는 것이 좋다.
이밖에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40분까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밀양까지 오가는 버스가 13차례 있으며 김해~삼랑진 사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40분까지 14차례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삼랑진역에서 창원.마산.진주로 돌아오는 기차편은 오전 6시 6분이 첫차며 7시 28분부터 오후 10시 16분 막차까지 10차례 운행되고 있다.
자가용차로 갈 때는 창원 동읍을 지나는 국도 14호선을 따라 가다 국도 25호선을 만나 낙동강을 건넌 다음 밀양 평촌 마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된다. 길 따라 가다 밀양강을 건너면 곧바로 삼랑진읍이다. 읍내로 들어가서 왼편 삼랑진역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다 역 못미쳐 다시 왼쪽으로 틀면 만어사 가는 길이다.
원래는 콘크리트길이었는데 지금은 공사하느라고 곳곳을 뒤집어놓았다. 가을이면 들판 나락 이삭을 벗삼아 걸어볼 수도 있겠다. 1시간이면 족하다고 한다.


▶가볼만한 곳<삼랑진 역주변>

삼랑진은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그래서 이름조차도 세 물결(三浪)인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경부고속도로가 놓인 뒤로도 철도가 주요한 운송수단일 때까지는 적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경부선과 경전선이 갈라지는 분기점으로서 화물과 손님을 나르는 노릇은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언제부턴가 밀양이 더 큰 역이 돼 버렸고 삼랑진역의 명성은 조금씩 색이 바래고 말았다.
이같은 옛사정을 말해주듯, 역 앞에는 일제 시대의 적산 가옥과 60.70년대 박정희 시절의 돌격대식 단층짜리 시멘트 건물이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역 왼편으로 있는 적산가옥에는 낚시점과 비디오 대여점 따위가 있다. 꼭 <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찍는 촬영장의 세트 같은 느낌으로 마치 시간을 거꾸로 달려온 듯하다.
맞은편 오른쪽에는 다방과 복덕방과 떡집이 자리잡았다. 가수 최백호씨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처럼, 이름도 그럴 듯하게 ‘백마’다방이다.
칙칙푹푹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옛날식’ 기차의 이미지를 따와 지은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 보는데, 노래 가사처럼 “슬픈 색소폰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도라지 위스키”를 한 잔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만어사 가는 길이 있거든 되도록이면 기차를 타고 삼랑진역에서 내리기를 권하고 싶다. 또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좀 남으면 30년 전 풍경으로 되돌아가 삼랑진 역앞 편도 1차로 좁은 길을 거닐다가 백마다방에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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