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생력 그대로 담아

한 겹, 두 겹, 세 겹. 적어도 손질을 세 번 해야 먹을 수 있는 열매. 가을을 대표하는 가로수로 우리 눈에 익은 은행나무의 열매가 은행이다. 고생대부터 빙하기를 거쳐 살아남은 화석식물인 은행나무는 중국 양쯔강 하류가 원산지로 자생력이 강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생육한다. 환경오염에 강하고 수명이 길어 도시 가로수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열매는 살구를 닮았는데, 씨에 은빛이 돌아 은행(銀杏)이라 불리며, 중국에서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자가 그 열매를 먹는다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라고 부른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라고도 불린다. 은행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냄새가 나지 않지만, 떨어져 으깨지면 고약한 냄새가 나고 옻이 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이다. 은행은 지름 약 2㎝의 부드러운 황색 열매 안에 모서리가 2개 있는 흰색의 단단한 중과피가 있는데, 이것을 은행 또는 백자(白子)라고 한다. 그 안으로 갈색 피막의 내종피를 벗기면, 그 속에 청록색 배젖이 있는데, 이건 인(仁)이라고 해 식용한다.

은행에는 '시안(청산) 배당체'라는 독성분이 있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으면, 중추신경 계통에 이상을 가져와 구토·현기증·체온상승 등 자극과 마비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은행은 반드시 익혀 먹는데, 익히는 동안 독소가 감소하고 독성이 존재하는 갈색 피막 부분은 열을 가하면 쉽게 제거된다.

은행의 주요 성분은 수분 55%, 탄수화물 35%, 단백질 5%, 지방이 1.5% 정도이고 100g당 에너지는 172kcal 정도다. 이 밖에도 신경조직 성분이 되는 레시틴과 비타민 D 합성 모체가 되는 에르고스테린이 함유되어 있다.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A, B1, B2 등도 함유한다.

은행은 성욕감퇴, 신경쇠약, 전신피로 등에 효능이 있으며, 기침이나 가래를 삭이고 밤에 오줌싸는 어린이의 야뇨증, 여성의 대하증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은행보다 더 효과가 우수한 것이 은행잎이다. 은행잎은 혈액순환을 개선, 노인성 치매를 치료하는 효과가 커서 다양한 식품 원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유효성분인 징코민은 우리나라 은행잎의 함량이 20~100배 정도 더 높다고 알려졌다.

<동의보감>에는 '은행은 성질이 차고 맛은 달며, 독성이 있는데 폐와 위의 탁한 기를 맑게 하고 숨찬 것과 기침을 멎게 한다. 그러나 많이 먹으면 배 아픔, 구토, 설사, 발열 등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행에 의한 중독은 감초 달인 물을 마시면 바로 해독이 된다. 아직 은행을 어느 정도 먹는 게 적당한지 과학적 근거는 없는데, 어린이는 하루 4~5개, 성인 15~20알이 적당하다는 견해가 있다. 매일 30~40개 정도를 수개월간 장기 섭취해도 독성은 없다고 한다.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높지만, 은행의 가장 큰 특징은 고유한 풍미에 있다. 구운 은행은 향이 높아 고급 음식과 술안주로 널리 사용이 된다. 은행, 채를 썬 대추, 꿀을 밀쌈에 싸서 완성하는 '은행 밀쌈'과 은행·마늘을 꼬치에 꿰어 소금을 뿌린 '은행 마늘꼬치'는 좋은 안주다. 은행·검은 콩·호두·땅콩 등 견과류와 혼합한 장조림, 다진 은행과 달걀을 혼합한 '은행 달걀찜'은 어린이를 위한 반찬이 된다. '은행죽'과 은행이 들어간 영양밥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요리다. 은행의 딱딱한 껍데기를 벗기기 어려울 때에는 우유팩에 은행 20알 정도 넣어 전자레인지에 1~2분 정도 익히면 속껍질까지 쉽게 벗길 수 있다.

/신정혜(경남도립 남해대학 호텔조리제빵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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