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음 향토음식 자리매김…조미료 없이 염분으로만 간해

사천 선진리 앞바다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지금은 지방문화재가 된 곳이 사천 '선진리성'이다.

1936년 고적 81호에 지정되고서, 1963년 사적 50호로 지정되었으나 1998년 지방문화재 자료 27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이 서생포(양산), 임랑포(양산), 기장, 부산포, 구포, 가덕도, 장문포, 안골포, 웅천, 순천 등처럼 일본군이 축조한 왜성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일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주로 성을 쌓았는데, 이러한 성은 남해안가에 무려 24곳이나 있다. 특히, 사천 용현면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전투가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선조 25년(1592년) 사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제2차 사천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적선 13척을 격파하는 놀라운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선조 31년(1598년) 동일원이 이끄는 3만 조명연합군이 전시 중 오발로 탄약 궤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연합군은 혼란에 빠지게 되어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끄는 팔천 일본군이 성을 나와 역습, 연합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북으로 패주하게 한 곳이다.

'보릿고개' 넘겨주던 바다의 선물

◇사천 선진리성 향토음식 '백합죽' = 이 선진리성 주변에는 봄이면 벚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루고, 성 아래 마을에는 활어회와 백합조개를 요리해 파는 횟집촌이 형성되어 있다.

특히, 선진리 백합죽은 20여 년 전부터 전국 식도락가들에게 알려져 삼천포를 들르는 사람들이 이곳을 꼭 들러 먹고 가는 사천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사천 사람들은 '백합'을 사투리로 '약백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생합, 노랑조개라고도 한다. 산란기가 5~11월인 이 조개는 민물 영향을 받는 조개로 바다 수심 20m 모래나 진흙에서 서식하는데, 어린 조개는 한천질(젤리 상태로 굳어지는 물질)의 끈을 내서 조류를 타고 이동한다.

   
 
  1대 박옥남 할머니  
   
 
  2대 딸 김미애 씨  
 
따뜻한 봄이 오면, 바다 밑 모래 속에 숨어 있던 백합이 하나둘씩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온다.

대대로 배를 타고 고기나 조개를 잡으면서 살아온 용현면 선진리 사람들은 바람이 없는 날을 택해 백합을 잡으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바람이 많은 날은 배를 타지 않고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백합을 잡는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물이 빠진 자리에 발에 밟히는 게 백합과 개발(바지락)이었다. 백합과 개발을 잡으면 진주나 삼천포에 나가 팔기도 하고, 구워 먹고 국 끓여 먹고 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여타 지역에서는 보릿고개라고 제일 힘들 때가 봄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나마 백합과 바지락이 있어 보릿고개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고마웠던 백합이 지금은 진사공단이 들어서고 진양호 방수로 백합이 떼죽음을 당한 이후 귀한 조개로 취급될 만큼 잘 잡히지 않는다.

백합은 껍데기가 두껍고 둥근 테가 있으며 2개 흑갈색 띠가 비스듬하게 있다. 껍질 테를 보면서 나이를 알 수 있는데 5~6년산이 가장 맛이 좋다.

조개 껍데기에 광택이 나고 파르스름한 빛을 내는 것이 싱싱한 것이다. 큰 것은 구이나 회, 탕에 쓰이고 작은 것은 죽을 끓여 먹는다.

◇'해원장' 박옥남 할머니의 고소한 백합죽 = 백합죽은 찹쌀에 백합을 껍질째 넣고 인삼, 대추, 잣, 밤, 마늘 등과 함께 끓인다.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도 잘돼 건강식으로도 많이 알려졌는데 소금, 간장, 인공 조미료 등을 쓰지 않고 백합에서 우러난 염분만으로 간을 해 맛이 아주 담백하다.

'해원장' 하면 백합죽이라고 할 정도로 박옥남(76) 할머니가 끓인 백합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맛이 한결같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우선 백합죽을 보면, 백합조개의 고운 모습이 찹쌀죽과 어울려 아름답기도 하다. 코끝에 전해 오는 참기름 향이 고소하고 입안에서 어우러진 감칠맛이 오미, 오향, 오감을 함께 느끼게 한다.

1983년 처음 개업한 이래 25년 동안 한결같은 맛으로 사천 백합죽을 전국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박옥남 할머니도 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제 딸 김미애(44) 씨 부부에게 백합죽 끓이는 솜씨를 전수하고 바쁠 때나 가끔 나와 거들어주고 계신다.

이 집을 드나든 지도 어언 10여 년. 그때 그 친분관계는 무시 못하는가 보다. 옛날 특별한 정보 없이 이곳저곳 낯선 곳을 찾아다니며 글을 쓰느라 고생도 했지만, 예전에 만났던 분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 반갑게 대해주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1001-1번지. 055-854-4433.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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