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 지상주의자들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활화산처럼 꿈틀대던 대운하. 그 활화산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변동은 낙동강 유역에서 시작됐다. 습지 보전을 부르짖던 람사르총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태호 지사를 포함한 낙동강 유역 5개 시·도 단체장이 낙동강 물길 살리기 사업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들은 얼마 전 국회에서 이 사업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정부가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강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홍수와 수량 부족·수질 오염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운하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름 바꿔 본색 드러내기

그런데 이 사업이 나온 계기가 재미있다. 5개 시·도지사가 공동건의문을 낸 시점이 최상철 균형발전위원장이 경남에 다녀간 직후라는 점이다. 초청강연 차 경남도를 찾은 최 위원장은 5개 시·도를 아우르는 정부의 초광역개발사업 계획을 밝히면서 낙동강 사업의 적절성을 비쳤다. 이른바 내륙성장벨트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 한 달 만에 물길 사업의 개요와 건의문이 나왔다. 더구나 건의문은 정부가 구상하는 초광역개발권에 이 사업을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무슨 말인가. 국가균형발전의 수장이 기왕 운하사업을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에게 낙동강 사업에 추동을 걸고 그에 따라 사업계획이 발표되고 국가사업 반영을 주문하는 라운드 형식을 취한 것이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형국 아닌가.

화급한 경제 문제 때문에 총대 메기가 쉽지 않은 시기에 운하 물꼬가 트인 셈이다. 거기에 '힘있는 자들'의 '힘 실린' 발언도 이어졌다. 친이계 모임인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이 최근 지역균형발전 대책을 논의하면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지방소외 논란과 실물 경제 침체를 풀 대안으로 대운하가 적격이라는 요지였다.

사업 시작과 동시에 고용을 유발하고 낙후한 내륙지방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강조하며. 타당성이 검증된 공약사업인 만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의견도 나왔다. 단계적인 개발 방안도 언급됐다. 한강과 낙동강의 물길 잇기는 나중에 하더라도 하천정비와 수질개선, 수자원 확보 같은 사업이라도 먼저 하자는 것이었다. 5개 시·도지사의 물길 사업과 맥이 통하는 대목이다.

김진홍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비슷한 시기 라디오 인터뷰에서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대운하가 매우 중요하며 내년에 첫 삽을 떠야 한다고까지 했다. 김 의장은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대통령의 불가 발언 이후 움츠러든 대운하가 정부 당국자와 친이계 인사, 지방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사업 내용과 명칭이다. 도가 내놓은 사업 개요를 보자. 안동에서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315㎞ 구간에 45개의 개별사업을 추진하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는 대략 33조 5000억 원이 투입되는데 그 중 28% 9조 5000억 원은 민간자본이다. 건설업계를 염두에 둔 거다. 어떻게 보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이 사업에 민간자본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의아스럽다. 사업이 본격화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민간에서 흘러들 거라 본다. 또 이 사업에는 물류와 관광이 들어 있다. 물류와 관광이 뭔가. 대운하의 핵심 아닌가. 운하의 본래 목적은 물류 이동이다. 그리고 운하사업의 부수적인 요건이 관광산업이다.

시·도지사-실세, 한목소리

우리는 두 사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업 명칭도 눈여겨 볼만하다. 낙동강 물길 살리기. 운하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뭔가 친환경적이라는 뉘앙스가 풍기질 않는가.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단체장들은 강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도 이 사업이 시급하다고 했다. 두루두루 얼마나 신경을 쏟았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개발과 복원이 함께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우리가 자주 듣는 지속 가능한 성장(개발), 친환경 개발, 녹색 성장 같은 용어를 보자.

거기엔 분명 함정이 있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양립 불가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점이 모두 뒤에 있다. 물론 앞은 개발론자들이 내세우는 수사이며 유혹이자 명분이다. 낙동강 사업이 그런 과정 속에 진행되고 있다. 실세의 말처럼 언젠가는 한반도의 물길이 모두 이어지길 바라면서. 그 공이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 믿으면서.

나는 지난번 이 난에서 대운하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카드가 언젠가는 다시 나올 거라 걱정했다. 그 언젠가의 신호탄이 낙동강권 5개 시·도, 그중에서도 경남도의 행보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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