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가 내년에 있을 월드콰이어 챔피언십 경연대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고 예산으로 애초 100억 원을 계획했다가 약 절반 정도로 하향 조정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기업 경기침체 때문에 성금 모금분을 크게 낮추어 잡은 탓이다.

불신 재촉 대운하 의심예산

명분이 그럴듯하다. 람사르 총회로 녹색 성장에 동력을 얻었고 이번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합창경연대회를 열어 '문화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관광객 100만 명을 불러들이겠다는 호언장담도 빼놓지 않았다.

좋은 시절 같았으면 반색했음 직한 일이건만 반향이 썩 달갑지 않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에?" 조의 냉기가 냉큼 되돌아 나온다. 분담금 50억 원에 시상금만 64만 달러고 외국팀이 상금을 받으면 원화를 갖고 제나라로 돌아갈 리도 없다.

람사르 관광특수에 실망한 상인들은 100만 명의 내외국 관광객이 지역에 와서 지갑을 풀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에도 시큰둥한 눈치다.

하필이면 허리띠가 끝도 없이 조여들어 가는 이 마당에 웬 국제행사가 발꿈치를 쳐드는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자는 귀거래사의 복원인가. 어렵다, 곤란하다는 등의 부정일변도의 시각을 벗어 줄 것을 바라는 여당 정치권의 희망사항을 반영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예정된 코스였다고 해도 그러나 시기적 선택은 우호적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불신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유행병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실마리는 촛불집회가 제공했다. 대통령은 거듭된 대국민 사과에서 그만큼이나 일희일비를 거듭했다. 민심과의 괴리를 유감으로, 또 소통부족으로 반성했다가 국면이 달라지면 그 말을 번복하고 강경 독주로 돌변했다.

경제정책과 부자 감세를 둘러싼 혼선과 말 바꾸기는 이제 식상해서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이제 대통령의 말도 먹혀들지 않는다. 은행 돈을 풀라 해도 눈만 끔벅거릴 뿐이며 이자율을 낮추라고 엄포를 놓아도 두꺼비 파리 삼키듯 미동도 않는다.

최근에 자유선진당이 제기한 대운하 관련 의심 예산은 불신의 골짜기에 또 한차례 뜨거운 불길을 지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 중 2조 원 이상에 달하는 치수 및 하천 관련 예산이 대운하 포석용으로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하천관리 및 홍수예보 예산 1조 8395억 원은 대운하 기초 정비 사업용으로 의심돼 325억 원만 남기고 1조 8070억 원을 삭감요구키로 당론을 모았다는 것이다. 또 댐 건설 및 치수능력 증대사업비 3875억 원은 사전기초공사비로 의심돼 전액 삭감 요구키로 했으며 수자원 정책예산은 대운하 정당성 연구와 경제·환경성 검토사업비로 의심돼 109억 원 중 66억 5000만 원을 삭감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대운하는 반대 여론에 굴복한 이명박 대통령이 포기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함으로써 사실상 중단상태에 있었고 또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권력주변에서 그동안 간간이 상기시키기라도 하는 듯 돌출발언이 이어져 왔고 자유선진당의 지적대로라면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중단없는 잠수질이 계속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대운하 여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여론조사기관은 십중팔구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일을 두고 확대경을 갖다대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또 대통령의 지지도가 30% 보폭에 묶여 있는 국면에서 여론의 호응도가 크게 나아졌다고 불 이유는 찾기 어렵다.

신뢰 없이 위기극복 될까

보수성향의 자유선진당이 단지 당리를 좇아 대운하 의심예산을 적발(?)하는데 앞장섰을까. 설사 그렇다 해도 귀를 막고 종을 훔치는 소아병적 어리석음이 오늘의 불신 풍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일등 공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기와 불신은 동전의 양면인가. 위기의식이 높아지면 신뢰는 퇴출당하는가. 꼭 11년 전 국가부도 때 전 국민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나와 위기를 극복했다. 그때는 믿음이 있었다. 신뢰가 따르면 위기는 능히 반전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지금의 위기는 미상불 그때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늘 푸른 언덕은 보이지 않고 자갈밭 길이 발길을 굼뜨게 한다. 경남이 헝가리와 중국을 물리치고 꽤 성가 있는 국제행사를 따왔는데도 공치사 한 번 제대로 못 듣는 연유가 이해될 만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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