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돋우는 쌉싸래한 매력

파랗게 높아만 가는 하늘과 울긋불긋 치장한 가을 산이 부르는 소리에 못 이긴 나들이객들의 발걸음을 잡아 세우고, 가을을 맛보게 하는 먹을거리인 도토리묵. 가을 산에서 저절로 떨어져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주워다 정성을 더해 만드는 음식이니 산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묵은 전분의 함량이 비교적 높은 곡물이나 열매를 물에 불려 갈거나 말려 가루를 낸 다음 가라앉혀 앙금을 얻어 죽처럼 쑤어 식혀서 굳힌 음식이다. 곡류를 주식으로 하는 농경문화권 국가 중 우리나라만의 고유 음식으로 궁중음식이나 고급요리에 이용해온 녹두로 만든 청포묵, 강원도의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묵, 다섯 모가 나서 모밀로 불리기도 하는 메밀묵 등이 있다.

묵은 원료가 다르므로 그 맛이 다르고, 제 맛을 내는 계절이 서로 다르다. 보드라운 촉감이 있는 청포묵은 봄, 국수 가락처럼 술술 넘어가는 올챙이묵은 여름, 약간의 씁쓸한 맛이 더 입맛을 돋우는 도토리묵은 가을, 구수함이 좋은 메밀묵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고 제격이다.

도토리묵은 떡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종류 열매인 도토리 가루로 만드는데, 상수리나무 열매는 상수리, 졸참나무 열매는 굴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토리는 신석기 시대부터 먹어온 식품이라 하는데, 고려시대 윤여형의 '상실가' 중에 "늙은이만 남아 빈집을 지키다가 사흘을 굶다 못해 도토리 주우러 산으로 간다"는 대목과 "도토리나무는 들판을 내다보고 열매를 맺는다"라는 옛말은 가뭄 때문에 흉년이 들었을 때 도토리를 곡식 대신 먹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루에 4~5배 물을 부어 만든 묵이 적은 원료로 속을 든든히 배고픔을 달래니 예부터 흉년을 대비한 첫 번째 구황식품이었다.

도토리 주성분으로 전분과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을 들 수 있는데, 도토리묵 열량은 100g당 43kcal 정도로 낮아 포만감을 주면서도 열량 섭취를 낮출 수 있다. 타닌 성분은 몸속 지방이나 중금속 등과 결합해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대표적인 참살이 식품이다.

묵은 그 자체만으로 별맛이 없다. 그래서인지 같이 먹는 양념이나 부재료 맛이나 향을 쉽게 받아들이고 어우러져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묵 본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소금, 깨, 참기름만 넣고 무치면 된다. 오이, 깻잎, 쑥갓 등 채소와 양념장에 무쳐서 즐길 수도 있다.

   
 
 

묵이 남을 때에는 간장에 담가두거나 채를 썰어 말려두면 나중에 활용할 수 있다. 간장에 담가둔 묵 장아찌는 썰어 양념과 함께 무쳐먹고, 말려둔 묵은 채소와 함께 볶아 묵 볶음을 해먹어도 색다른 맛이다. 채소 육수와 동치미 국물, 묵은지와 함께 먹는 묵 국수나 밥도 별미다.

묵은 원료 식품에서 전분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치고, 또 물 조절을 잘해 쑤는 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가정에서 도토리묵을 제대로 만들어 먹기도 쉽지 않아 뭔가 부족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은 계절 음식을 즐기는 여유가 메워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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