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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시범·실험학교에 교사들 '파김치'

최규정 기자 gjchoi@idomin.com 2000년 11월 25일 토요일
교사생활 10년째인 최교사(34·진해 ㄱ초교)는 4학년 담임이다. 합주부 지도교사이면서 연구시범학교 운영보고회를 위한 준비도 함께 했다. 최교사는 하반기 내내 말 그대로 의자에 한번 제대로 앉아 볼 틈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고 토로한다.

연구시범학교 운영보고회를 열기 위해서는 적어도 3달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하지만 차라리 운영보고회를 위한 준비는 그나마 쉬운 편이라고. 그보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환경 꾸미기, 교실청소 등이 더 많은 일거리가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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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다 보니 정작 중요한 수업에 전념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일에 대한 부담으로 어쩌다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시범학교를 마치고 나면 명퇴를 하거나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운영발표회가 끝나면 흐지부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업연구대회 좀 없앨 수 없나요· 아울러 각 학교 내에서 하는 수업연구도 없애고요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학생들의 수업결손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플러스 요인은 얼마나 되나요·”(전교조 부산지회 게시판에서)

연구시범학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않고 있다. 실태를 알아보고 인선교사가 보는 입장을 알아보았다.

▲실태

교육부는 연구·시범·실험학교의 목표를 ‘교육의 당면과제 및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새로운 교육이론과 교육방법, 교육자료 등을 연구 개발하여 교육 현장에 확산보급하기 위함’이라 밝히고 있다.

2000년 현재 도내 교육부 지정 연구·시범·실험학교는 초·중·고교를 포함하여 8개(초교 5개), 도지정 연구·시범·실험학교는 119개(초교 71개)이다. 여기에다 시군 지정 연구·시범·실험학교(시군지정은 연말께 도교육청으로 보고하면 된다)까지 포함하면 도내 449개 초교 가운데 100개 이상의 초교가 연구·시범·실험학교로 지정되어 있는 셈이다.

분과를 보면 도덕·국어 등 전교과 관련 연구·시범·실험학교와 에너지 절약 특기 적성 교육 등 당년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시책 과제, 그리고 교육부 지정 교육과정 모형개발 학교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과연 필요한가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쳐옴에도 아직도 일선 교사들과 교육관계자들 사이에는 연구·시범·실험학교가 교육적으로 정말 필요한 부분인가에 대해서는 큰 괴리감이 자리하고 있다.



▷현장교사들의 목소리

현장교사들은 연구·시범·실험학교로 지정된 교사들은 정상적인 교과과정 외에 신경을 더 쓰게 되고 주제에 맞는 내용을 교과 시간에 투입하거나 따로 시간을 빼내어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과는 별개의 업무부담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오랜 세월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업무부담이 많은 교사들에게 그렇지 않은 학교 교사보다 승진이나 전보시 가산 점수나 혜택을 부여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점수를 노리거나, 그런 학교만을 쫓아가는 풍토, 연구하고 시범학교 운영을 잘 하는 교사가 능력 있다는 잘못된 관념이 자리잡게 되었고, 본질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학급운영이 아니라 아이들을 이용한 학교 운영 형태로 계획서 짜 맞추기, 실적 부풀리기 등의 역기능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구·시범·실험학교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학급당 인원수 과다, 잡무, 각종 행사 동원 등으로 일이 많다고 얘기한다.

지난 10일 합법교원노조 충남준비위원회가 조사한 ‘초등교과 전담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교사 2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 수업방해요인(복수 응답)으로 공문서 등 잡무처리(61.8%)에 이어 연구· 시범학교 준비와 발표가 46.7%로 2위를 차지해 연구·시범학교에 대한 일선 교사들의 심적 부담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교사들은 실제적 효과가 아이들에게 드러나지도 않고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는 연구· 시범학교의 무용론을 주장하며 시군 지정 연구·시범·실험학교라도 없애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전남도교육청은 현재 시·군지정 연구·시범·실험학교는 가급적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행정지도를 해 나가기 위한 정책을 마련중이다.



▷교육관계자들의 목소리

이에 반해 도교육청 초등교육과 관계자들의 주장은 판이하다. 오히려 “전학교가 연구·시범·실험학교로 지정돼 수업과 연구가 병행되어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교육의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도교육청 역시 현장 교사들의 이러한 시정 요구에 대해 지난 97년부터 연구·시범학교 지도체제의 일원화, 과제 추진과정에서의 과정별 추진 내용과 방법의 안내, 윤리성과 논리성이 유지된 계획서 및 보고서의 작성법에 대해 지침을 전달하는 등 연구·시범·실험학교와 관련된 학교 현장의 변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대책은 없나

이처럼 연구·시범·실험학교에 관해서는 현장 교사들과 교육관계자들이 서로 딴 곳을 보고 있는 것이 해결점을 찾아가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즉 도교육청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지금도 역기능만을 강조하는 일부 교사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고, 현장 교사들은 “현장은 아직도 형식적이고 보여주기 식으로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론만 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교사에게 승진이라는 단계가 너무 단순하다. 교사가 승진하는 단계가 교감· 장학사·교장인데 무엇인가 열심히 해서 명예욕을 올리려는 의욕은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교사들 역시 이같은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점수를 따야 되는 것은 인지상정. 그런데 점수화할 수 있는 방법이 경력과 각종 대회에서 표창· 상장을 받거나 연구·시범학교에서 과제를 수행하면 받는 점수라는 것이다. 경력은 어차피 세월이 지나면 받는 것이고 표창, 상장은 개인적인 노력이라고 보면 연구·시범학교는 전 교사들이 함께 하는 일이라 상대적으로 쉽게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교조 경남지부 초등지회의 한 교사의 다음 얘기는 새겨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연구·실험·시범학교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그런 업무에 시간을 뺏기고 고달픈 것이 고작 승진이나 전보 점수라는 것으로 상쇄될 수 없으며, 그것이 내 교사적 양심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껍데기만 늘어가는 교육적 행위는 이제 아무런 소용도 없다. 알맹이를 하나씩 하나씩 채울 수 있는 끊임없는 실천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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