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장맛이 전해온맛의 절정 '칠보화반'

건축양식이 왜색이 짙다. 간판조차 천황식당? 그러나 집을 지은 시기는 일제 강점기지만 일본의 천황과 이 식당 이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주인의 시할머니(1대 고 강문숙)가 진주비빔밥 장사를 시작한 건 1929년이니 진주비빔밥에 대한 최초 자료인 <매일신보>에 연재한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1936년)보다 7년 앞서 진주비빔밥 장사를 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 내용을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책으로 펴낸다. 이 책의 '물산' 편에 지방 명을 적어 '식물로 전주는 콩나물, 진주는 비빔밥'을 기록하고 있다. 천황식당 역사는 진주비빔밥에 관한 최초 문헌자료보다 앞선다.

◇진주 비빔밥의 대표 = 다른 지방 어디에도 이렇게 3대에 이어 비빔밥 장사를 하는 집은 없을 것이다. 천황식당의 2대 고 오봉순 할머니는 시어머니 고 강문숙 할머니가 물려 준 손맛으로 진주비빔밥 장사를 계속해왔다. 그런데 오봉순 할머니는 시어머니로부터 손맛만 물려받은 게 아니다. 음식은 장맛에서 나온다는 믿음과 함께 천황식당 울 안 장독대도 함께 물려받았다. 진주비빔밥 맛은 장맛이 좋아야 한다는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2대 오봉순 할머니

전주비빔밥의 기본은 양지머리 육수로 밥을 한 다음 콩나물을 얹어 뜸을 들인 밥을 담아 그 위에 각개 찬으로 준비한 생채 나물을 넣고 비빔을 한 것이다.

반면, 진주비빔밥의 기본은 사골 국물로 밥을 한 후 그 위에 갖은 양념으로 무친 숙채 나물로 모양을 낸다. 무침을 할 때 주물러 나물이 쪼그라들게 하기 때문에 장맛이 나물 맛을 좌우한다.

여기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게 바로 돌김을 구워 뜯어 간장에 물을 타고 깨소금, 참기름, 설탕으로 무친 속 대기와 쇠고기, 청포 묵이다.

2대 오봉순 할머니로부터 1983년에 천황식당 진주비빔밥 손맛과 장독대를 물려받은 3대 김정희(55) 사장은 전통 된장, 간장, 고추장 담그는 방법을 물려받아 힘들지만 직접 장을 담근다고 한다.

한편, 천황식당의 진주비빔밥 유래에는 의아한 부분이 있다. '진주비빔밥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민간 부녀자들이 싸움 중인 군관들을 위해 밥을 지어 나를 때, 밥과 반찬을 따로 나르는 번거로움을 덜고자 밥 위에다 각종 나물을 얹었던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손맛과 함께 장독대 물려받아…삶은 나물 갖은 양념으로 무쳐…정성스레 담아내면 '그림 한 폭'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 이외에 1985년 한양대학교 고 이성우 교수가 쓴 <한국요리문화사> '비빔밥의 문화', 1984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이 발행한 <한국민속종합보고서>, 1994년 평양과학백과사전 종합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에 분명히 '꽃밥(花飯)'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창 전쟁 중인 현장에서 '꽃밥'이라고 표현할 만큼 밥 위에 아름답게 나물을 돌려 담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3대 김정희 사장
그런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아름다운 진주비빔밥의 유래를 잘 설명한 문헌이 있다. 1984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이 발행한 <한국민속종합보고서>다. 이 문헌을 살펴볼 때에 진주 제사 음식에서 독립된 음식으로 발전한 게 '헛제삿밥'과 '꽃밥'이라고 일컫는 진주비빔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양념한 육회의 전통 = 진주비빔밥 유래가 군사문화든 제례문화든 두 가지를 다 남길 필요는 있다. 최근에는 동황색의 둥근 놋대접, 흰빛의 밥 테, 나물 다섯 가지가 어우러진 녹청색, 여기에 보탕국, 그 위에 묽은 엿 고추장, 특히 쇠고기를 채 썰어 깨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육회를 얹은 걸 보고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고 표현하면서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

문헌적 근거와 역사성이 있음에도 대한민국 대표 비빔밥 하면 '진주비빔밥'이 아닌 '전주비빔밥'을 손꼽는다. 국내 항공사 기내식은 물론 외국에 나가도 전주비빔밥은 비빔밥의 대명사가 되었다. 진주비빔밥 내용이 부족하거나 문헌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닌데 소싸움은 청도나 의령, 헛제삿밥은 안동이 더 알려진 것처럼 진주비빔밥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건 조상 탓이 아닌 후대의 탓일 터다. 77년, 기나긴 세월 3대에 걸쳐 진주비빔밥 맛을 이어 온 천황식당 가업에 다소 위안을 받아야 하는 진주시 행정이 왠지 초라해 보인다.

'천황식당' 진주 대안동 4-1. 055-741-2646.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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