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난 절은 많아도 원래 모양 그대로 남아 있는 절터는 드물다.
우거진 수풀 가운데 주춧돌 조금 하고 깨어진 부도 정도가 남아 옛날 자취만 전하는 폐사지는 도내에도 여러 군데 있다.
하지만 아마도 축대와 면석을 비롯해 여러 유적들이 오밀조밀 남아 그 위에다 생각만으로도 절집을 지어볼 수 있는 절터는 아마 영암사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있는 영암사지. 황매산(1108m)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모산재(767m) 기슭에 자리잡았는데 울퉁불퉁 집채보다 더 큰 바위가 서 있는 양쪽 능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60년대와 80년대에 발굴을 했으나 절 이름도 뚜렷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마을 사람들 입에서 전해 내려오던 것을 그대로 받아썼다.
쌍사자석등(보물 353호)과 3층석탑(보물 480호)은 영암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음을 말해준다. 법주사 석등과 솜씨가 비슷하다거나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절터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물건들이 많이 있다. 지금 같으면 대웅전이 들어섰을 금당 터 앞에 있는 축대가 한 발 가량 툭 튀어 나와 있다. 장대석 크기만큼 정사각형으로 튀어나온 이곳에 옛날 금당을 밝혔던 쌍사자 석등이 세워져 있다.
또 튀어나온 축대 양옆으로 돌계단을 만들어 붙인 것도 보기 드문 모양이다. 손잡이는 곡선으로 만들어졌지만 가파르기가 상당한 편이다.
금당 자리 주춧돌을 받친 면석도 색다르다. 왼편으로 돌아가면 해태처럼 보이는 짐승을 돋을새김해 놓은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고개를 외로 꼰 채로 꼬리를 쳐들고 있는데, 곧바로 뛰쳐나올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금당 뒤쪽 면석만 빼고 가운데와 좌우 양쪽에 같은 모습을 각각 2마리씩 새겨넣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으로 30m 정도 올라가면 작은 금당 자리가 따로 있다. 금당 좌우에 옛날 비석을 모셨던 돌거북이 하나씩 앉아 있다. 왼쪽 거북은 고개를 치켜든 반면, 오른쪽 것은 다소곳이 숙였다. 게다가 몸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인데다 여의주까지 물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둘러본 다음에는 적당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깔고 앉아 본다. 골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뙤약볕 아래 흘린 땀을 식히면서 배까지 차게 한다. 폐사지를 곁에 두고 머리 속으로 대웅전이랑 명부전이랑 집을 다시 지어 올린다. 단청을 올린 다음 흐르는 바람에 맞춰 상상 속의 풍경을 울려보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절 오른쪽 논을 메워서 새로 짓고 있는 극락보전은 아예 보지 않거나 애써 무시하는 편이 낫다.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화려해서 폐사지만의 독특한 쓸쓸함이나 고즈넉함을 해치기 때문이다.
땀을 식히고 상상을 즐긴 다음에는 모산재를 올라볼 차례다. 300m 가량 밑으로 내려가 새로 지어진 황룡사 진입로를 따라 등산길이 나 있다. 온통 바위로 이뤄진 산이어서 산길은 아주 가파르다. 천천히 오르면 2시간, 다리를 재게 놀리면 1시간도 채 안돼 꼭대기에 설 수 있다.
북쪽 황매산 정상 방향으로는 봄이면 핏빛으로 어우러졌을 철쭉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다. 황매산은 봄마다 축제가 열릴 만큼 떼지어 피는 철쭉꽃으로 이름나 있다. 모산재에서 황매산으로 이어지는 너르고 평평한 들판은 올봄에도 철쭉꽃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영암사지가 있는 남쪽은 힘줄 솟은 양팔처럼 능선이 쭉 뻗어 있다. 영암사는 그 품에 안겨 있는 셈이다. 바위들은 멀리서 보기로는 올망졸망 얹혀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엄청난 크기들이다. 바위들은 아래쪽으로 바짝 붙어서 위협하는 듯한 모양이다. 틈 사이로는 나지막하게 뿌리내린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한 번 올라보면 “황매산의 정수는 바로 모산재에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바로 무릎을 치면서 동의할 수 있다.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만, 위에서 맛보는 풍경의 시원함은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가볼만한 곳 - 순결바위

모산재 꼭대기에서 안내 표지 따라 영암사지 방향으로 800m쯤 내려오면 순결바위라는 데가 나온다.
바위 끝 쪽에서 보면 신기하게도 여자 젖가슴처럼 바위가 봉긋 솟아올라 있고 아래쪽에 가로세로로 틈이 벌어져 있는 곳이다. 너비는 40~60cm, 깊이는 2~3m쯤 되어 보이는데 이곳에 들어갈 수 있으면 일단 순결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누구 작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생활이 순결하지 못한 남자나 여자는 순결바위의 갈라진 틈에 들어가지지 않으며, 혹시 들어갔다 해도 바위가 오므라들어 다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바위 모양이 색다르게 생긴 탓에, 오가는 등산객들이 재미 삼아 입에 올리기 시작한 말들이 더해지면서 이같은 얘기로 만들어졌나 보다 짐작해 보는 것이다. 혹시 연인끼리 산에 오른다면, 재미 삼아 번갈아 가며 들어가 봐도 좋을 듯 싶다.
여기서 다시 산길 따라 400m를 내려가면 국사당이라는 인공 돌굴이 나온다. 큰돌로 틀을 짠 위에 잔돌을 얹어 만들었다.
옛날 무학대사가 조선 태조 이성계를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조선 건국 이래 경상도 관찰사는 해마다 이 곳을 찾아 제사를 지내야 했다는데, 지금도 삼짇날에는 마을사람들이 국태민안을 위해 제를 올린다고 한다. 무속신앙도 함께하는 모양이어서 양초를 태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찾아가는 길

창원.마산 사람들은 합천 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 평소 자주 오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산재까지는 80km가 채 되지 않는다.
자동차를 타고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들어가 진주를 향해 가다가 군북 나들목에서 빠져나간다. 여기서 오른쪽 의령 가는 길을 잡아 나가다가 다시 길 따라 왼쪽으로 곧장 나가면 된다. 읍내로 들어가거나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안되는 것이다.
국도 20호선을 따라 진주쪽으로 가다보면 대의고개가 나온다. 꾸불꾸불한 고개를 넘으면 바로 만나게 되는 국도 33호선으로 옮겨 탄다.
여기서 얼마 못가 나오는 삼가에서 이번에는 60호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가회면쪽으로 가는 1089호 지방도와 마주치면 된다. 지방도는 아직 정비가 완전히 된 게 아니어서 길이 좁고 콘크리트 포장이 된 곳도 군데군데 나온다.
1089호 지방도는 가회면 소재지를 지난다. 왼쪽에 가회초교, 오른쪽에 가회중학교가 나오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든다. 여기서부터 길따라 10여 분 달리면 나오는 영암사 들머리 표지판을 보고 왼쪽으로 기어오르면 된다.
진주에서는 국도 33호선을 타고 넘어오면 모산재 등산길로 쉽게 올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창원.마산.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합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삼가면에서 내려 가회면 둔내리 가는 시내버스로 옮겨 타야 한다. 하루 3차례밖에 다니지 않으므로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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