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께 정성으로 올리던 그 맛

내림 손맛이야말로 그동안 우리의 전통음식을 지켜 온 중심 역할을 해왔다. 가문이나 지역별로 독특한 맛과 형태를 유지하면서 전통음식이나 향토 음식을 지켜왔다.

그런 탓인지 조선 중기 찬란했던 우리의 음식문화가 외세에 의해 군주국가와 양반계층이 무너지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간편 단순한 보편적 서민 음식이 우리 식생활 문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지극히 슬로푸드(slow food)에 가까운 전통음식과 향토 음식의 맥을 잇는다는 것은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심지어 역대 명문 종가(宗家)조차 고옥(古屋)이 텅 비어 폐허에 이르는 현실에서 수백 년 내려온 전통음식이 제 모습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진주지역 전통적 제례 상차림이 기본

만약에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면, 개인적 차원을 떠나 정부가 나서서 문화재적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 어쨌든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이나 향토 음식은 그 깊은 맛만큼이나 조리방법도 감히 남이 어깨너머로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절차가 까다롭고 힘들며 격식이 필요하다.

그러니 간편 단순한 생활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전통음식이나 향토 음식의 내림 손맛이 매력이 있을 리 없다.

그러기에 진주 헛제삿밥은 더 귀하고 귀하다. 오죽하면 조선 후기 진주로 부임한 신임 관찰사가 이미 서울 궁안까지 소문이 난 진주 헛제삿밥이 먹고 싶어 진주로 부임하자마자 헛제삿밥을 청하였던바, 관아에서는 급한 김에 대충 제사 음식을 차려 올리자 관찰사는 대로하여 "이 음식이 어찌 헛제삿밥이냐? 나는 헛제삿밥을 청하였느니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 다시 진짜 제삿밥을 짓듯 부엌에 향불을 피우고 제사 음식을 정성스럽게 장만해 격식을 갖춘 헛제삿밥을 올리자 흡족하게 생각하며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신임 관찰사는 이미 헛제삿밥은 음식에 향 내음이 나야 제 맛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밥·반찬 놋쇠그릇에 비벼 먹는게 특징

안동이야 지금까지 진주, 대구보다 헛제삿밥이 잘 알려져 내려오고 있다. 1925년 최영년(崔永年)이 쓴 <해동죽지(海東竹枝)> 중편 음식명물(飮食名物)에 보면 대구의 별미로 감주(甘酒)와 함께 헛제삿밥(虛祭飯)이 나온다. "대구부(大邱府) 내 음식점에서 허제반을 판매하는데, 맛이 있어 유명했고 일명 헛제삿밥이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전부터 서울, 경기, 충청, 전라 등 조선팔도에 제사 안 지내는 집이 없었는데, 이 헛제삿밥은 경상도의 안동, 대구, 진주지방만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 유래를 보면 조선역사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는 "조선인재반영남(朝鮮人才半嶺南)"이라 했다. 이 말은 조선의 인재 반이 영남인이라는 뜻이다.

경상좌도였던 안동의 이황(李滉)과 경상우도였던 합천을 중심으로 한 조식(曺植)은 영남 사림파(嶺南士林派)의 두 축을 이뤘고, 이 사림파는 16세기 이후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이들은 관직에 있다가 고향에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썼고, 특히 남명 조식 선생 같은 분은 벼슬에 나가지 않고 높은 학문으로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들 유생(儒生)들이 밤늦게까지 글을 읽다가 밤참을 먹으려니 남들의 이목도 있고 해서, 밤참으로 음식을 준비한 후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축문을 읽고 먹었던 것이 바로 헛제삿밥이라 한다.

진주 헛제삿밥은 진주의 전통적 제례를 기본으로 한 상차림으로 안동이나 대구와 그 차림이 다르다. 즉, 헛제삿밥 차림이 제수 음식과 같다. 기본적인 상차림으로 3적(3炙: 육적·어적·소적(두부적)), 3탕(3湯: 명태·건홍합·피문어), 3색 나물(숙주·고사리·시금치), 김치, 쇠고기육전, 조기, 밥, 국이 올라간다.

친정어머니 조리법 전수 별미집으로…명인 칭호 받고 진주 3대 요리 자리매김

헛제삿밥은 밥과 찬을 따로 하여 먹을 수도 있지만, 놋쇠 그릇에 비벼서 놋쇠 수저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헛제삿밥은 먹고 난 후 제례 상에 올려졌던 것처럼 조율이시(사과, 감, 배, 대추)가 후식으로 나온다.

진주의 헛제삿밥은 1960년대까지 밤참 음식으로 유명세한 음식이었으나 그 이후 서서히 사라지고 그 맥이 끊겼다. 그러나 2000년경 필자가 진주 냉면에 대한 문헌을 발견해 진주 음식에 대한 관심을 두고 취재를 하던 중 진주 헛제삿밥이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진주 헛제삿밥 조리법을 아는 분을 찾던 중 현 '진주 헛제사밥' 주인 이명덕(61) 사장을 만나게 됐다.

이명덕 사장은 친정어머니 이달순(84) 씨로부터 진주 헛제삿밥 조리법을 배웠다고 하며, 자신이 그 전통의 대를 이어나가서 이때부터 진주시 평안동 105번지(진주중학교 앞) 한옥으로 이전해 영업을 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금산면 갈전리로 옮겨 진주 별미집으로 자리하게 됐다.

한편, 이명덕 사장은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내림 손맛을 며느리 이갑순(36) 씨에게 서서히 물려주고 있다. 이명덕 사장은 사단법인 대한명인협회로부터 진주 헛제삿밥 명인 칭호를 얻었다. 진주 헛제삿밥이 진주 비빔밥, 진주 냉면과 함께 진주 3대 전통음식으로 자리매김해 대를 이어 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크다.

진주 헛제사밥. 경남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1121번지. 055-761-7334, 7335.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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