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명절로 승화시킨 인도네시아인들의 지혜

"오늘 왜 이렇게 공항 분위기가 썰렁 하지요?"라는 나의 질문에 빨렘방 공항 택시 운전수는 "오늘 대부분 함께 모여 여러가지 놀이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인도네시아의 제56회 광복절(8월 17일)인 오늘 나는 자카르타에서 남부수마뜨라 주의 주청 소재지인 빨렘방으로 왔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곧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인 셈이다. 인구가 약 1400만 정도 되는 메가시티이다. 빨렘방은 인구 140만의 지방도시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자카르타에서 자카르타 인구의 십분의 일이 되는 도시로 온 것이다.
자카르타 동남쪽 끝에 있는 우리 집에서 자카르타 북쪽 끝에 있는 쩡까렝 국제공항으로 가는데는 자카르타 도심 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한산한 공항과 고속도로

왕복 6차선 도심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띄엄 띄엄 차가 다녔다. 최고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이러한 한산함 속에서 시원스럽게 제 속도를 내며 달릴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기 보다는 왠지 썰렁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거의 하루 종일 차가 밀리고 북새통을 이룬다. 거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양쪽차선이 다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만다. 사고난 차선 반대편 차선의 차들은 사고난것 구경 한다고 속도를 늦추어 지나 가기때문이다.
빨렘방 공항에 도착해서도 자카르타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허전한듯한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아 발디딜 틈도 없는 좁은 빨렘방 공항 대합실 분위기는 아랑곳 하고 몇몇 짐꾼들과 공항택시 운전수 몇명만 보였다. 특별히 마중 나올 사람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바글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좀 낳은데 오늘은 웬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길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내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다지도 큰가라는 반문을 하기도 하였다.

동네마다 축제중

이렇듯 한산한 도심과는 달리 택시운전수의 말대로 동네마다 사람들이 운집해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샅을 지나면서 보니 높다란 껍질 벗긴 나뭇기둥을 세워놓고 그 위에다가 직경 일미터되는 둥근태를 만들어 단후 둥근태에다 각종 생필품을 주렁주렁 달아 두었다.
제일 꼭대기에는 메라뿌띠(인도네시아의 국기로서 붉은 색과 흰색으로 되어 있다)를 게양해 두었다.
팀을 나누어 기름을 발라 반질 반질한 나뭇기둥을 먼저 올라가 메라뿌띠를 낚아 채는 팀이 우승팀이다. 물론 우승팀은 달려있는 모든 생필품을 상으로 차지하게 된다. 우승팀이 될려면 팀웍을 잘 이루어야 한다. 서로 등에 등을 타고 차곡차곡 올라갈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슨 놀이인가 물어보니 운전수는 빤잣뽀혼삐낭이라고 했다. '삐낭나무 오르기 놀이'란 뜻이다. 동네마다 이런 놀이를 하고 연신 확성기에서 우렁찬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함께 즐기고 있었다.
광복절이 되면 빤잣뽀혼삐낭 놀이 뿐 아니라 롬바비다르(조정경기), 롬바마깐꺼루뿍(달려서 과자 먹고 다시 뛰기), 롬바까룽(두발을 자루에 넣은 후 묶어 달리기), 노래경연대회등 여러가지 대회를 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광복절은 말 그대로 축제일이다.
운전수는 아이가 몇명이냐는 나의 물음에 두살 된 아이가 하나있고 나이가 서른이라고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인들의 광복절에 대한 의식을 설명해 주는 친절도 베풀어 주었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와 일본으로부터 해방

광복절 두주쯤 전부터 광복절 행사 준비를 한다. 여러가지 놀이를 하기 위해 동장은 미리 기부금을 모은다. 자원해서 얼마씩 내는데 여유가 있는 사람은 좀더 많이, 없는 사람은 조금 혹은 아예 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은 놀이를 해서 이긴 사람들에게 줄 상품 구입에 사용된다. 광복절 당일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동네를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이날은 이들에게서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네덜란드 지배(350여년)로부터,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으로부터의 지긋 지긋한 지배(3년6개월)로부터 해방된 날이요, 전 인도네시아가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탄생하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날을 위해 준비하고 이 날이 되면 청소하는 것 그리고 온 동네사람들이 함께 모여 놀이를 즐기는 것은 식민지배와 전쟁을 경험한자들뿐 아니라 그런 경험이 없는 세대들 까지도 독립투사들이 흘린 숭고한 피를 기억하고 기리며 국가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있어서 다종족 다문화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 중에 하나가 '독립기념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광복절은 이미 전통명절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추석, 설과 같은 전통명절로 뿌리를 내렸다. 어쩌면 전 인도네시아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독립기념일 밖에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도네시아 명절에는 러바란, 성탄절, 구정등이 있다. 러바란은 라마단(30일간의 금식기간-실은 낮과 밤을 바꾸어 식사를 함)이 끝나는 마지막 날로서 회교 축제일이다. 성탄절은 기독교인들의 축제일, 신정은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듯하고 구정은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의 설이다. 이렇듯 전 인도네시아인들이 같은날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없는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전 인도네시아인들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광복절'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종족간의 갈등도 이 날 속에 녹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의 광복절은?

내 생각은 이제 우리나라의 광복절로 옮겨졌다. 광복절이 되어 온 국민이 기뻐해야 마땅한데 아직 반쪽으로 나누어져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됨의 중요성에 치우쳐 물불 가리지 않는 듯한 분위기, 공립학교에다가 단군상을 설치하는 어리석음, 그런 어리석음을 보고도 목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서글프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광복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공휴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관주도의 광복절 행사가 고작은 아닌지. 광복절을 명절로 승화시킨 인도네시아인들의 슬기가 부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내 짐을 차에서 내린 후 그 짐을 집안까지 가져다 주려는 택시 운전수의 친절이 고맙다.
광복절을 명절로 승화시킨 지혜, 택시 운전수의 친절을 보면서 인도네시아 장래가 밝아지기를 희망해 본다.

*백성영 기자는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고향은 경남 거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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