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에게 영어 수업시수를 늘리겠다는 방침이 말썽이다. 교육과학부는 2010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영어 수업 시간을 지금의 주당 1시간에서 3시간으로, 5~6학년은 지금의 주당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초중등 교육은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지역 편차에 구애됨이 없이,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토록 국가가 인성 함양과 지식 습득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2세 국민이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민주시민으로서 나라와 세계의 평화 번영에 이바지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정부와 교육자의 기본 책무다.

영어 구사 능력은 생존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2008년 초 '영어몰입교육' 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우리 교육은 기회균등의 원칙도 없이 민족 정체성마저 부인하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끝을 모르는 영어 사교육비 지출과 미국의 창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1997년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이 도입된 이래 초등학교 저학년뿐만 아니라 미취학 유아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영어교육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조기 유학생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도 미국식 영어 발음을 자랑스러워하는 현상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가 영어수업을 늘려 학생과 학부모를 사교육비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사교육비 절반 감축, 교육만족 두 배'는 이명박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이다. 그러나 통계청이 내놓은 올 1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도시가구의 가구당 월평균으로 학원이나 과외비에 쓴 돈은 16만 4657원이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의 14만 2319원보다 15.7%나 증가했다. 이것은 지난 2003년부터 통계청이 가계수지 동향 조사에서 학원과 과외비를 따로 나눠 알아본 이래 가장 높은 상승폭이었다.

영어교육을 중시함으로써 국어를 비롯한 다른 교과목은 상대적으로 경시될 수밖에 없다.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영어보다 모국어에 기반을 둔 의사소통능력과 창의적 사고력부터 길러야 한다. 영어 사대주의에 빠진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초등학교 영어교육 강화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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