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희 할머니네 4대가족 이야기


아무리 좋은 집에 산다한들, 맛난 음식을 먹는다 한들, 또 돈더미에 파묻혀 산다한들 마음이 편치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행복이 먼데 있는 줄만 알고 자꾸 눈만 치켜뜨고 살다가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세태. 그래도 명절만 되면 맘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회귀본능을 채우려 기를 쓰고 천릿길도 마다지 않고 달려간다. 가족의 힘이다.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히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가족을 찾았다. 이숙희(74·마산시 상남 2동) 할머니 댁. 약속을 하고 찾은 지난 월요일(15일). 할머니말고도 며느리와 손자·증손자까지 옹기종기 안방에 앉아 왁자하게 맞아준다. “아이고, 이리 날도 추븐데. 뭐 취재할끼 있겠습니꺼.특별한기 하나도 없는데.” 그 날은 올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할머니를 보고, 식구들을 보고 여러번 놀란다.

할머니가 너무 젊고 정정해서, 며느리들이 하나같이 밝아서, 4세대가 제집 드나들듯 살아가는 모습이라서 놀란다.

할머니의 가족소개가 이어졌다. 할머니가족은 아들 셋 딸 둘 5남매다. 아들을 내리 낳고 딸을 낳았다. 큰 아들내외가 백영기(57·현대전기) ·오옥자(54)씨, 둘째는 백종기(54·카스테레오점 운영)·정명임(50)씨, 셋째 백흥기(51·삼성전자)·장정민(51)씨, 그리고 딸둘은 백정희(49)·김종찬(55)씨, 백정숙(43)·이상영(47)씨다. 이들 5남매가 각각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뤘으니 가정마다 자녀가 1~3명씩해서 할머니댁 총 식구는 25명이다.

어느 가족이나 3세대 4세대까지 이어보면 그 정도 숫자는 나오지만 이할머니네는 이들 식구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얼굴을 보며 산다는데 특별함이 있다. 아들들의 근무처(·)가 하나같이 마산 오동동이고, 딸들도 마산일대에서 가게 등 사업을 한다. 할머니 연세쯤 되면 자식들, 손주녀석들 보고싶어 속병나는 이들도 제법 되련만 할머니는 그런 걱정에선 아예 비켜나있다. “우리는예, 눈만 뜨면 서로를 보거든예. 지겹도록 봅니더. 호호.” 할머니 손녀 수영(29)씨가 털털하게 웃는다.

할머니는 꽃다운 서른일곱에 할아버지와 사별했다. 그 뒤 이런 장사, 저런 장사를 하며 자식 다섯을 올곧게 키웠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차라리 ‘터프한 성격’이라면서 가족간의 우애를 굳이 며느리들 덕분이라 한다. 둘째 며느리 정씨가 “정도 많고 사랑도 넘치는 큰 형님 덕에 우리 모두 많이 배웁니다”한다.

할머니네는 옹기종기 마산토박이처럼 산다는 공통점외에 ‘가무’를 즐긴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할머니네는 지난 5월 마산 가톨릭여성회관에서 주최한 가족가요제에서 <네박자>를 신나게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이날 대회에 나가게 된 것도 할머니가 10년넘게 다니는 노인학교에서 적극 추천해서였다. 할머니는 서예면 서예, 장구면 장구, 게이트 볼이면 게이트 볼. 참 재주꾼이다. 돈이 많다고 가능한 것은 아닌성 싶다. 할머니방의 벽에 가득 걸린 수예품이며, 사군자친 작품들이 할머니의 ‘끼’를 짐작케 한다.

자식들이 그 끼를 물려받은 것인지 노래와 놀이를 즐기는 데 가족화목의 비결이 있는 모양이다. 며느리들은 한두번은 ‘열전 노래방’같은 행사에 나가 인기몰이를 한 적도 있고, 가족끼리 노래대결도 자주 벌인단다. 살다보면 누군들 시름이 없으랴만 할머니네 가족들은 노래 한자락으로 시름을 날려보내고, 웃음으로 화목을 일군다.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설계해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건강해보인다.

“설날도 바빠예. 얼른 제사지내고 또 큰 댁이 있는 고성에 몽땅 가야 되거든예.” 분재하기 위해 일부러 일반 주택에서 산다는 가족들. 분재에 정성을 기울이듯 가까이있는 식구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나오지 말라 한사코 말려도 일부러 대문 저 밖까지 나와서 정을 담아 배웅한다. “살펴 가입시더. 미끄러질라 조심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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