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위해 자신이 매달린 로프를 자르라고 명령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매달린 줄을 잘랐다는 죄책감에 산악 등반을 그만둔 피터. 피터는 3년 후 여동생 애니가 K2 골짜기에 고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그마한 압력이나 열에도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하는 폭탄을 메고 산에 오른다. 그리고 몇 년전 K2에서 아내를 잃고 아내의 시신을 찾아 산을 헤매는 또다른 산악인 몽고메리 윅.

인간이란 참 초라하고 왜소한 존재다. 아무리 50년간 K2의 기상을 관찰하고 첨단 등산 장비를 동원해 산에 오르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산악인은 “산이 거기에 있었기에 간 것 뿐”이라고 그럴듯한 이유를 말했지만 <버티칼 리미트>에서 K2를 정복하려는 백만장자 앨리엇 본은 겨우 항공사 홍보를 위한 이벤트로 생사를 건 등반을 시작한다. 결국 이를 비웃기라도 한 듯 40명이 떠난 대장정은 대원 3명만을 K2의 얼음골짜기에 고립시킨 채 무산된다.

마틴 캠벨 감독은 고도 2만 6000피트에서 2시간에 한번씩 물을 먹지 않으면 폐에 물이 차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여기에 죽음 앞에 인간의 속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본이 있는 K2의 고요한 골짜기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눈사태에 저항해 산에 오르는 구조팀을 번갈아 비추며 극한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 관객의 심장을 조여온다. 이는 순간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이로드롭만큼이나 강렬한데다 한 순간도 딴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들이 매순간 펼쳐져 머리가 아플 정도다.

하지만 자연의 거대함에 옆구리가 아파올 정도의 긴장감은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 누이를 위해서 절벽 사이를 뛰어다니는 피터와 5개의 폭탄이 모조리 터지고 어떤 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떨어지지만 결국 살아남는 건 애니 한 명이고,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후 평안한 미소로 죽음을 맞이하는 다소 작위적인 몽고메리 윅의 모습에서 죽음 앞에 숨을 들이쉬었다 뱉었다 했던 관객은 이 모든 것이 휴머니즘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였다고 느끼는 순간 허무해진다. 오락영화의 미덕이자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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