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부딪혀 물소리도 ‘쟁쟁’

따라 날씨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8월이라지만 입추가 지나니까 무더위가 가셨다. 며칠 전만 해도 숨쉬기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였다. 하지만 한 풀 꺾이기는 했지만 한낮의 햇볕은 견뎌내기가 만만치 않다.
또 일에 치여 여름휴가를 갖지 못한 이들도 꽤 될 테고,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 때까지는 언제라도 더위가 되돌아올 수도 있겠다.
흐르는 물소리 따라 산길을 오르는 것은 어떨까.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에 가면 석골계곡이 있다. 들머리에는 석골사라는 절이 있는데 바로 아래에 10m는 훨씬 넘는 석골폭포가 들어앉아 염제(炎帝)를 물리치고 있었다.
물이 있으면 어느 골짜기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서늘한 기운이 폭포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규모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으나 위에서 알알이 흩어지며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산청 하면 지리산을 떠올리듯이, 밀양 하면 얼음골만 생각해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산청에 지리산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밀양도 얼음골 말고는 다른 관광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석골계곡은 아직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처럼 유명세를 타지 않은 덕분에 다른 유원지에 견줘 볼 때 맑고 깨끗하고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자리를 깔고 주저앉는다면 석골계곡을 찾은 뜻을 반밖에 이루지 못한다.
석골 계곡은 왼편으로 억산과 이어져 있고 오른편으로 쭉 달아 가면 운문산이 나온다. 운문산은 석남사와 운문사를 끼고 있는 덕분에 울산이나 경북 청도의 산쯤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석골계곡에서 오르는 등산길이 제대로 된 것이다.
절집 앞에 있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왜 석골이라 하는지 물었더니, 눈에 보이지 않느냐고 외려 눈이 동그래져 되묻는다. “보세요, 온통 돌이잖아요. 물아래도 돌이고 양쪽 산기슭에도 바위투성이잖아요. 바위 석, 뼈 골!”
돌에 부딪혀서인지, 물소리까지 쟁쟁하게 울린다. 생각컨대 자갈과 모래 위를 흐르는 물이라면 저렇게 소리가 시원스럽고 요란할 리가 없을 텐데, 운문산 오르는 산길 내내 좔좔 흐르는 물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운문산 오르는 길엔 별다른 게 또 있다. 보통 산길을 걸어보면 옛날 초동들이 지겟작대기 두드리며 걷던 길이기 일쑤여서, 힘들여 길을 닦은 흔적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운문산 오르는 길은 그냥 흙길이 아니라 자잘한 돌로 축대를 받친 위에 흙을 깐 듯한 길이다. 물론 돌아가는 굽잇길이거나 할 때는 자연스레 사람들이 흙을 다져 생긴 길이 나오지만, 특히 골짜기 이쪽저쪽을 넘나들 때면 꼭 이같은 돌축대를 만나게 된다.
돌이 너무 많은 골짜기여서 그럴까. 아마 인공이 가미된 것 같은데, 지금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훨씬 적었을 옛날에 누가 무슨 목적으로 산길을 텄을까 궁금해진다. 고려시대 신분차별을 깨자고 떨쳐일어났던 운문적일까, 아니면 정상아래 자리잡은 암자의 스님들일까 그저 생각만 해본다.
골사에서 운문산 꼭대기까지는 2시간30분이 걸린다. 바삐 걸으면 그렇다는 얘기고, 길벗이 있어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자면 30분은 더 잡아야 한다. 더구나 골짜기를 가로지르면서 물이라도 묻힐라치면 여기서 또 30분을 추가해야 하겠다.
물놀이는 내려오는 길에 즐기면 된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이 크게 붐비지는 않는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지만 유명한 산의 이름난 등산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물놀이는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골짜기로 빠져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깔면 된다. 적당한 장소는 곳곳에 눈에 띄지만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석골폭포 아래쪽에만 사람들이 오글거리는 것이다. 늦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산은 오르지도 않고 시원한 물이 반가워 그냥 주저앉는 모양이다.
운이 좋으면 산짐승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물로 잡아 씨가 말라버렸다는 살모사도 한 마리 만났다. 또 청설모와 벌이는 생존경쟁에서 처지고 있다는 다람쥐도 만났는데, 사람을 피하지 않아 한동안 눈동자를 마주칠 수 있었다.

▶찾아가는 길

석골계곡은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에 있다. 절집 아래 가게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밀양 시내에서 70리쯤 되는데, 한 식구가 택시를 타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단다. 마음씨 좋은 기사를 만나면 1만5000원이나 1만 6000원이면 되고 피서철이면 보통 2만원은 줘야 한다고.
창원.마산에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창원 39사를 거쳐 동읍으로 빠져나가는 국도 25호선을 타면 된다. 도로는 진영을 거쳐 밀양으로 이어진다. 밀양시에 접어들면 길 따라 좌회전해 터널을 지난 다음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시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24호 국도로 갈아탄다. 24호선 중에서도 창녕.부곡 방향이 아니라 울산.언양 방면으로 가는 길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진짜 갈라지는 지점은 밀양강을 건너 나오는 ‘긴늪’이다. 빽빽하게 우거진 솔밭이 양쪽 강변으로 펼쳐져 있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야겠다.
넉넉잡아 1시간 30분이면 석골계곡 들머리에 가 닿는다. 금곡 삼거리에서 표충사로 이어지는 길을 떨구고 얼음골 가는 길로 줄곧 달리면 된다. 오른편으로 노래.술.음식 복합건물인 알프스모텔을 스쳐지난 다음 약수정주유소가 보이면 콘크리트 포장길로 좌회전해야 한다. 석골사라는 표지판이 조그맣게 서 있다. 마을 들머리에서는 주차료로 1000원을 받고 있는데, 주차한 차량 관리까지 해주지는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밀양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얼음골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원서리에서 내려 걸으면 되는데, 마을만 지나면 개울과 바로 이어지므로 석골사까지 1km 남짓 걸어도 지겹지는 않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먹을거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돈만 걱정하면 된다.
절 바로 아래 폭포 들머리에는 컨테이너를 들어앉혀 만든 가게가 있다. 웬만한 것은 다 파는데, 다만, 밥은 안된다. 국수도 시간이 걸려서 바쁠 때는 안되고 끼니거리로는 라면 정도만 된다.
마을에는 가든과 식당들이 몇 군데 자리잡고 있다. 대경가든은 마을 들머리에 있는데 노래방도 겸하고 있다. 전화는 (055) 352-1400. 화함식당은 골짜기 이르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이 ‘꽃을 품는다’는 뜻으로 특이하다. (055) 353-1825로 연락하면 된다.
청림산장은 민박도 함께하고 있다. 염소.오리 요리가 빼어나고 반찬도 깔끔하다. 개울과 이웃해 있어 아이들 물놀이하기에도 알맞다. 전화 (055) 35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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