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44년 지키던 솥 며느리에 물려준지 14년72년 박정희 방문 이후 '대통령 국밥'으로 유명세의령 물 맛·질 좋은 한우 한결같은 양념이 맛 비결

방안에 부뚜막이 있고 가마솥이 걸려 있다.

펄펄 끓는 가마솥 곁에는 언제나 한결같이 이봉순 할매가 국밥을 푸고 있었는데, 할매는 5년 전에 작고하시고, 그 모습 그대로 아직도 시어머니의 온기가 남아 있는 가마솥 곁에서 며느리 송영희 여사가 국밥을 푸고 있다.

할매가 돌아가신 후 몇몇 사람들은 "할매가 돌아가신 후 국밥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이 말은 필자만 들은 게 아니라 국밥집 며느리도 같은 말을 들었다며 웃는다.

1950년 한국전쟁이 나던 해 5일마다 서는 의령 장에서 전(廛)을 펴고 쇠고깃국에다 밥을 토렴(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함)해 팔기 시작했는데, 읍내 장에 와 먹던 쇠고기 국밥 맛이 의령의 각 면 산골 곳곳까지 소문이 나서 의령을 찾은 장꾼들은 물론, 진주를 비롯해 인근 시·군에서 의령 장을 찾아 이봉순 할매의 쇠고기 국밥을 먹고 갔다.

이봉순 할매가 44년 동안 국밥을 말아 팔다 국밥 솥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들어앉은 지가 1994년이니 며느리가 국밥을 말아낸 세월도 어느덧 14년이나 흘렀다.

부뚜막에 앉아 말아내던 그 맛 그대로

아마 할매가 돌아가신 후부터 국밥 맛이 변했다고 하는 분은 할매에 대한 신뢰의 양념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도 시어머니가 앉아 있으시던 그 자리에 앉아 그 모습 그대로 늙어가나 보다.

1972년 4월 22일에 열린 의병기념비와 곽재우 장군 동상제막식.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로식당에 들러 국밥을 먹어 더 유명해졌다. /김영복 원장 제공 1972년 4월 22일 아침, 경남 시골 의령읍내 국밥집에 갑자기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건장한 젊은이들이 들이닥쳐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닐 뿐만 아니라 주방에 들어와 국밥 재료를 조사했다. 할머니는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 젊은이들은 대통령을 수행해 온 검식관(檢食官)들과 경호원들이었다.

욕쟁이 할머니로 소문난 이봉순 할머니의 성깔을 사전에 몰랐던 수행원과 검식관의 무례를 그냥 넘기지 않은 할머니였다. 잠시 후 곽재우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러 의령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정해식(丁涇植) 경남도지사와 함께 종로국밥을 드시러 들렀다. 이후 '욕쟁이 할머니'라는 별칭과 함께 종로국밥은 대통령이 드신 국밥으로 유명해졌다.

평소에도 할머니는 손님에게 소주 1병 이상을 팔지 않으셨다. 만약 더 주문했다가는 "빌어먹을 놈 예가 술집이냐! 술 더 처먹으려면 술집에나 가라!"고 호통을 쳤다. 손님들은 할머니의 이런 욕도 덕담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국밥 맛은 물맛과 육질 좋은 쇠고기 맛, 양념 맛, 이 세 가지 맛이 좌우한다. 의령 종로국밥이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는 것은 의령의 산천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어 물맛이 그대로이며, 50여 년의 쇠고기 고르는 비결과 양념 맛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도축장과 계약해 갈빗살과 양지, 아롱사태, 머리뽈살, 대창을 구입하고, 1시간 30분간 푹 곤 다음에 덩어리 고기를 건져내 수육은 수육대로 건져 놓고 갈빗살은 결대로 다시 썰어 가마솥에 선지, 무, 파, 콩나물을 넣고 양념과 함께 끓여내는 게 국밥이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하루 소 서너 마리씩 팔았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4마리 정도를 판다고 한다.

필자는 이봉순 할머니가 부뚜막에 앉아 국밥을 뚝배기에 말아 내던 1980년대 중반부터 다녔으니 그 누구보다 이 집의 변함없는 국밥 맛을 아는 사람이다. 갈빗살의 부드러운 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돌고 국물은 담백하고 구수하다.

옛날 장터 국밥집은 식은 밥을 뚝배기에 담아 펄펄 끓는 국물에 토렴해 내놓았지만, 지금은 전기밥솥이 있어 토렴하지 않아도 뚝배기에 더운 밥을 담아 국물에 말기 때문에 맛은 더 있다. 그런데 먹을거리가 지천인 탓인지 지금 국밥보다 옛날 국밥이 꿀맛 같았던 게 생각만 해도 어금니 사이에 침이 고일 정도다.

주소 : 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 340-1, 전화 : 055-573-0303.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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