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터주-신흥 강호' 맛 대결 승자는?

반송시장 풍경.
상인들이 정성스레 가져온 나물·과일·생선·건어물 등을 내놓는다. 물건을 정리하고 나르느라 바쁘기 그지없다. 좀 더 저렴하고 좋은 것을 사려고, 가격을 흥정하느라 여념이 없는 손님도 볼 수 있다.

장이 들어선 재래시장 풍경이다. 시장통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상인들의 땀이 느껴진다. 아울러 사람으로 웅성대면서 나름 향내를 풍긴다. 이렇듯 재래시장은 언제나 우리네 서민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북적거리는 시장통에는 먹을거리 또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벼운 배고픔을 해결하기엔 포장마차 어묵·떡볶이가 알맞다. 시원한 막국수와 깨가 살짝 뿌려진 김밥은 지나가는 손님을 잡아 세운다.

그래도 후텁지근한 이 여름에 어느 음식도 따라오지 못할 시장 별미가 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쌓인 노곤함을 풀기에 딱 알맞다는 밀면. 시장통에 자리 잡은 밀면 집. 유달리 밀면을 맛깔스럽게 하기로 소문난 두 집을 찾아갔다.

명서밀면: 한약재료 3~4일 끓여 낸 육수, 해장에 딱~
창원 명서동 명서시장 '명서밀면'


창원시 명서동 명서시장 안에 있는 '명서밀면'은 김영중(51)·정명주(45) 부부가 20여 년 함께 가꿔온 맛 집이다. 50㎡ 남짓 규모로 그야말로 전통을 내세우는 '명서밀면'. 여름만 오면, 명서시장 일대를 비롯해 창원·마산 지역에서 손님이 몰려든다고 한다.

'명서밀면'은 남녀노소가 즐기는 밀면 집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려와 함께 즐기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근처 명곡고·명지여고·창원고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가게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포장해가는 사람도 많다. 광고나 선전 없이 오로지 소문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이런 복작거림 때문인지 김 사장은 가게 밖에 작은 평상 두 개를 손수 만들었다. 김영중 사장은 "예전에 자리가 워낙 없다 보니 밖에서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지금은 평상 덕에 기다리는 줄이 그나마 짧아졌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사시사철 밀면 한 가지만을 고집한다. 또 창원에서는 가히 원조격이라고 자부한다. 동생과 자형도 상남동·가음정동에서 각각 밀면 집을 하고 있다. 가끔 만나서 함께 밀면을 주제로 연구하고, 어떻게 더 맛있고 신선하게 해야 하는지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명서밀면'은 명곡로터리에서 명서 재래시장 방향으로 들어가 부영상가 뒤편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다.

△ 삼위일체를 이루는 맛

김 사장은 맛의 비법에 대해 "사골 육수가 다른 곳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라고 말한다. 극비에 부치는 육수는 한약재료를 넣어 3~4일 정도 우려내 뽑아서 쓴다고 한다. 식당이 비좁아 집에 있는 큰 솥에 한 번에 10말 정도를 끓인다.

이런 정성 때문일까. 국물을 안 버리고 후루룩 다 마시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날 마셨던 술기운을 푸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아울러 어떤 재료 때문인지 감추면서 김 사장은 임산부에게도 좋다고 전한다.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묻자 김 사장은 "사람들은 보통 밀면을 먹기 시작할 때 가위를 찔러 넣어 막 자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르지 말고 먹어야 당기는 면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명서밀면' 면은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어서 자르지 않아도 괜찮다. 재미있는 대목은 '면이 부드러우니 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문구가 액자로 걸려있는 점이다.

"옛날 냉장고가 없던 시절, 촌에서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릴 때 사람들이 즐겨 찾던 것이 육수였다"며 "육수가 여름철 보양에 탁월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고 김 사장은 덧붙였다. 육수 장점에 한약재료 효능까지 곁들여지니 건강에 좋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명서밀면은 육수의 깊고 시원한 맛도 있지만, 뒷맛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먹고 나서는 개운한 느낌이다.

또 비빔 밀면은 쫄깃한 면발과 새콤달콤한 양념 맛이 일품이다. 면은 목 넘김이 좋다.

김 사장은 "양념·육수·면이 밀면 한 그릇을 위해 삼위일체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며 "이런 생각으로 항상 제 맛을 내려고 생각한다"고 한다. 양파·고춧가루 등이 들어가는 양념에도 비밀은 숨어있다.

밀면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계란 반쪽, 채를 썬 오이, 냉면 무 김치 등은 삼위일체의 맛과 어우러진다. 밀면 5000원·비빔면 5000원.

반송밀면: '우리 몸엔 우리 것' 신토불이에서 나온 맛
창원 반림동 반송시장 '반송밀면'


최승경(52)·이종둘(52) 부부가 함께 꾸려온 '반송밀면'은 장사를 한 지 1년 정도 지난 밀면 집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널리 알려진 신흥 맛 집이다.

창원시 반림동 반송시장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오랜 기간 방앗간을 하다가 최승경 사장이 좋아하고 직접 연구까지 하다 보니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최 사장은 이른바 면 마니아다. 10여 년 동안 했던 방앗간 일 덕에 재료 구입에 필요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부산·진주·사천 등 전국에 이름난 냉면 집을 돌아다니며 터득한 지식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반송밀면'은 그 맛이 깔끔하면서 냉면 스타일을 닮은 구석이 많다.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역시 해장용으로도 좋다.

좋은 밀면을 만드는데 한의대를 나온 딸의 조언도 있었다고 한다. '반송밀면' 사골 육수에도 한약재가 들어간다. 비밀이라고 말하는 10여 가지 한약재는 기를 보완하고, 피도 맑게 한다고.

최승경·이종둘 부부는 4월부터 9월까지 여름철에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를 연다. 찾는 이가 워낙 많아 하루라도 쉬면 원성(?)을 듣는다고 한다. 병원에서 "먹고 싶어서 도저히 못 참겠다"며 목발을 짚고 온 환자도 손님 중에 있었다고 전한다.

또 서울에 사는 어떤 사람은 한 번 먹고 그 설렘을 못 잊어 여름마다 찾아온다는 등 소문이 자자하다.

한창 바쁜 여름철에는 자주 비상라인(?)을 가동한다고. 이종둘 사장은 "시장통에 있다 보니 주위 아는 언니들이 나서서 많이 도와준다"며 웃었다.

△ 신토불이에서 나온 맛

'반송밀면'은 돼지고기·양념장 등 모든 재료에서 외국산은 일절 쓰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최 사장은 "우리 것이 우리 몸에 제일 맞는다"며 자신의 요리 철학을 밝혔다.

부부는 결혼하고 나서 계속 장사만 해오다 보니 '진실은 통한다'라는 장사 비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고추장 등 국내 재료만을 고집하는 점이 '반송밀면'이 지닌 강점이다. 그래서인지 면의 쫄깃함과 육수가 내뿜는 맛은 조화를 이룬다.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서 어려운 면은 없느냐고 묻자 최 사장은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같이 어려워야지 하는 마음이다"며 "가격을 동결하고 남들 한 그릇 팔 때 내가 좀 더 노력해 두 그릇 팔자는 각오로 장사한다"고 말했다.

'반송밀면'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많다. 언뜻 그냥 쇠그릇처럼 보이는데, 최 사장은 밀면을 담는 쇠그릇에도 비밀이 숨어있다고 한다.

그릇 자체가 시원해 보이고, 쇠그릇의 전도율이 높아서 매우 차가워지는 과학 논리에 대한 설명이었다.

아울러 육수를 만들고자 준비하는 물에도 비밀이 숨어 있는데, 이것은 최고급 정보이자 극비란다.

이와 함께 다양한 메뉴로 손님을 맞는다. 겨울에는 해물칼국수가 추위를 달래주고, 동짓날 팥죽 대신 먹을 수 있는 팥 칼국수, 밀면만 먹고 나서 약간의 시장함을 메워주는 김치 왕만두, 여름 별미로 쌍벽을 이루는 콩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밀면 4000원·비빔 밀면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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