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레시피, 맛 제대로 못 내

'요리 책을 다시 쓰자!'고 주장하면 시중에 나와 있는 요리책을 다 부정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난 과감히 최소한 우리나라 즉 한식요리책은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필자 말고도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요리책에 적힌 레시피(recipe)대로 요리하면 제 맛이 안 난다는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요리책이 왜 필요할까?

요즘 책방에 가면 요리책이 수없이 많다. 요리 전문가는 물론 연예인까지 요리책을 낼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연예인이라고 해서 요리책을 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전문가가 쓴 것이나 연예인이 쓴 요리책 대부분이 사진과 내용 일부분 수정본에 불과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연히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이나 독자들에게 혼란은 물론 낭비만 안겨 주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은 조선 초기인 1540년경에 탁청공 김유(1481~1552)가 쓴 <수운잡방((需雲雜方)>으로 술 빚기 등 안동지방의 요리 121가지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그 이후 나온 책이 1611년 바닷가로 귀양 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이 유배지의 거친 음식들을 먹게 되자, 전에 먹던 좋은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적은 책 <도문대작(屠門大嚼)>이 있다.

이 책들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간단한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위 책들보다 좀 더 실증적인 요리책으로는 1670년(현종 11)경에 25종의 음식 만드는 법과 저장법 등 132조목이 적혀 있는 이현일(李玄逸)의 어머니인 안동장씨(安東張氏)가 쓴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 : 음식디미방)>이다.

<음식디미방>은 조리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지금도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 정도다. 근대 요리서로는 동경영양학교를 나온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이 있다. 아마 현대 요리책은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재료, 만드는 법 1, 2, 3, 4, 5 이런 식이다.

배추김치 담그는 법 예를 들어 보자.

재 료



만드는 법

①배추는 잘 다듬어서 뿌리 쪽에 절반가량 칼금을 넣어 쪼개어 소금물에 적시면서 줄기부분에만 소금을 뿌려 절인 다음 씻어 물기를 뺀다.

②무는 채 썰고, 갓, 미나리, 쪽파는 4㎝ 길이로 썬다.

③고춧가루는 멸치액젓, 새우젓을 넣어 불린 다음, 다진 마늘, 다진 생강을 넣고 섞어 무채, 미나리, 갓, 쪽파를 넣어 양념을 만든다.

④배추 잎 사이에 ③의 속을 골고루 넣고 겉잎으로 싸서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 익힌다.

서양요리나 일본요리가 아니라면 한식에는 이 레시피로 절대 제대로 된 맛이 날 리가 없다. 배추를 절일 때 소금물의 염도는 어느 정도이며, 시간은 얼마나 걸려 절여야 하며, 양념은 어떻게 만드는지 그 내용이 전혀 없다. 만약 이런 내용이 요리책을 쓴 저자의 노하우로 게재를 누락시켰다면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서양의 구이문화에 뿌리를 둔 요리라면 위간편 단순한 방법의 레시피로 맛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서양요리는 소스 맛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증숙(蒸熟:찌거나 삶다)문화인 우리 한식요리는 결코 간편 단순한 방법으로는 절대 제대로 된 맛을 낼 수가 없다. 물론 우리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선 규격화나 표준화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간편 단순한 레시피로는 한식요리는 제대로 된 맛을 낼 수가 없다. 비록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정확한 레시피를 만들어 우리 한식이 갖는 가치를 높여야겠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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