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받고 '떡값' 받았다 하지말라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떡값을 주고받았다'는 뉴스를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면 식생활문화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떡값을 빙자해 뇌물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오고 갔으면서도 떡값을 주고받은 사람들 주변 떡집에 떡이 동났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30평 이내 좁은 공간에서 떡 문화의 맥을 이어가려 애쓰는 전통 떡집의 존재조차 안중에 없을 것이다.

불과 100년도 못된 제과 제빵보다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 떡은 아직도 법적 제도적 지원책이나 국가기술자격증 제도조차 전혀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 공직자들은 뇌물을 받고 넉살 좋게 떡값을 받았다고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며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을 한다.

우선 뇌물은 언제부터 주고받았고, 어원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의 연방 판사였던 존 누난이 1984년에 쓴 <뇌물의 역사>라는 책에 보면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뇌물은 사회 골칫거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뇌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 브라이브(bribe)는 중세시대 선물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물 싫어할 사람이 없다는데서 뇌물은 시작된다.

한자 '뇌(뇌물줄 뇌: 賂)' 자는 '조개 패(貝)' 자에 '뒤져올 치( )' 부 아래 '입구(口)'자 즉 '각각(各)'이 조합된 글자로 '앞에 온 사람과 뒤에 온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르다'는 뜻으로 돈을 준 사람과 돈을 받은 자의 말이 다른 정당하지 못한 금전 거래를 뜻한다. 중국 고대에서는 조개를 화폐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조개 패(貝)' 자는 화폐 즉 재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뇌물은 있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가장 보편화한 뇌물의 유형은 자리보전과 승진을 위한 것이었다. 관리의 인사권을 가진 이조(吏曹)의 요직자나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정승들, 그리고 육경(六卿)의 집은 인사를 청탁하는 인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세종 때 명승 황희도 영의정일 때 뇌물사건의 투서가 들어오자 비록 무고였음에도 사직을 청했을 정도였고, 세종 때의 대사헌 윤형은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악한 것은 장오(贓汚)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장오(贓汚)란 '뇌물을 포함해 관리가 백성의 것을 가로채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암행어사 제도를 만들어 수령들의 비리에 중앙관료와의 결탁 여부를 조사하게 하고, 뇌물을 받은 관리를 엄중히 다스리고자 뇌물을 먹은 관리들의 이름을 적은 <장오인록안(臟汚人錄案)>이란 책을 만들어 뇌물을 받은 관리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고, 본인뿐 아니라 자손까지 의정부, 육조, 한성부, 승정원, 관찰사, 수령 따위엔 오를 수가 없도록 하고, 뇌물을 받은 관리에게 곤장을 안기고, 오른쪽 어깨에 '관물을 도둑질한 자'라는 뜻으로 '도관물(盜官物)'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기기도 하는 등 가혹한 형벌을 내렸음에도 뇌물은 근절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인정(人情)에는 사람들 사이의 정이란 뜻만이 아니라 뇌물이란 뜻도 담겨 있었다. 벼슬아치에게 주는 뇌물을 '인정물'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때론 이 인정이 물품값의 갑절을 넘기도 해서 농민들의 허리는 이래저래 휘게 마련이었다.

이 인정(人情)이라는 말은 유래가 있다. 굿거리에서 조상신이 왔다가 갈 때 자손들에게 '노자'를 달라고 한다. 저승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서 그 기간에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 노자 가운데는 영혼을 데려가는 사제에게 노자(돈)를 주는 것을 '인정(人情)'이라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시대 '인정물(人情物)'이라고 하던 '뇌물'이 요즘은 '떡값'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떡의 어원은 '덕(큰 덕: 德)'이 음운 변화를 거쳐 '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덕이란 베풀고 나누는데, 그 의미가 크다. 이렇듯 우리의 떡도 이웃에게 나누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이어져 내려왔었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 이르러 이러한 떡을 나누는 미풍양속은 점점 사라지고 '뇌물'을 상징하는 '떡값'으로 변질하여 전통음식인 떡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그르치고 있다.

알량한 권력이나 자리를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고자 정당하지 못한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 떡 주고 떡값 받는 선량한 떡집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뇌물 받고 '떡값 받았다'는 소리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

어차피 그들이 받은 뇌물(돈)은 떡값이나 떡 산업 발전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김영복 (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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