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몸은 리듬을 잃고 비틀거린다. 이럴 땐 몸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기가 강한 차가 제격이다. 봄을 질투하는 기운이 아침, 저녁을 엄습하는 초봄, 기가 허해질 때 차 한 잔이 가장 어울리는 시기다. 이럴 때 하루에 몇 잔을 마셨는지 세어보며 조심스럽게 커피를 마시기보다는 전통차로 몸과 기분도 상쾌하게 하는 것도 주말을 여유와 몸보신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그런 추세를 타고 찻집도 최근에는 화려한 앤티크 풍의 찻집보다 민속찻집이 강세다. 마산 구산면에 있는 두 곳의 민속찻집을 둘러봤다.

난포만 내려다 보며 산딸기 차 한잔 '갯마을 카페' 

마산시 구산면 백령찻집이 있는 백령고개를 넘어 심리에 다다르면 언덕배기에 황토집 초가가 보인다. 주인장 이정호(54) 씨가 직접 내부 실내장식까지 한 아담한 초가지만 문 안에 들어서면 꽤 넓다. 내부 중앙에 가마솥이 자리 잡고 있다. 가마솥 난로다. 겨울에는 고구마를 직접 구워 손님에게 나눠 주곤 하는 난로다.

마당에는 8명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오두막이 있다. 여름에는 원두막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치열할 정도다.

가마솥 난로가 있는 '갯마을 카페'.
△ 맛

이곳에도 한방차가 있지만 봄철 가장 어울리는 차는 진달래 차(5000원)와 산딸기 차(5000원)다. 진달래와 산딸기를 선택한 이유는 카페 근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면 주인장은 바구니를 들고 직접 산에 오른다. 직접 딴 진달래와 산딸기는 마당에 줄지어 선 장독으로 들어간다. 1년 숙성을 거친 것들만이 찻잔으로 들어간다. 입으로 느끼기 전 코가 미리 반응한다. 향뿐 아니라 맛까지 코를 통해 정보가 들어온다. 진달래 차는 약간 단맛이 있다. 설탕과 함께 숙성했기 때문이다. 커피를 제외하곤 모두 직접 담근 재료로 내놓는다.

이곳에서는 차와 함께 칼국수(6000원)도 판다. 카페 앞의 난포만 갯벌에서 캐낸 바지락과 직접 반죽해 밀대로 밀어 만든 무공해 칼국수다. 단연 인기품목이다. 솔잎차(5000원).

손님이 뜸한 늦은밤, 주인부부가 차 한잔을 즐긴다,

△ 볼거리

난포만의 절경은 어느 자리에서건 토담 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는 난포만을 카페가 자리한 언덕에서 보면 감탄사가 나온다.

낚시가 좋아 원전마을을 드나들던 주인장이 아예 10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난포만을 낀 이곳 언덕이 좋아서다.

내부 구경에 눈도 심심하지 않다. 우선 10년간 다녀간 손님들 낙서장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전지에 적은 27장의 낙서장은 다음에 찾는 손님들이 다시 확인해 보곤 한다.

대학 노트에 적은 낙서장도 5권이다. 주인장의 취미도 고스란히 카페 내부를 채웠다. 난포만을 배경으로 그린 유화 몇 점 사이로 미완성작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도 이젤 위에 놓여있다. 055-221-5727.

백령찻집의 역사와 함께 한 촛농이 왼쪽에 보인다.
연인과 소원 빌고 마시는 비법의 한방차 '백령찻집'

마산 구산면사무소를 지나 백령고개(일명 해딱고개)를 겨우 오르면 정상에 찻집 하나가 보인다.

백령찻집이 이색적인 민속찻집인 이유는 여느 민속찻집처럼 외형적으로 전통미를 꾸미려고 만들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18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귀곡산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해가 진 오후 8시께 찾은 찻집은 조금 으스스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촛불 10여 개와 60W 전구 하나가 5~6평 남짓한 공간을 밝힌다. 사물은 존재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히 무엇인지는 만져보고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다.

카페의 공간은 법문을 읽어주는 염불이 차지하고 있다. 짧은 머리의 주인장(강진구)도 동자승을 닮았다.

꼭 28년 전 백령제 고갯마루에 마을의 평화를 빌고자 백령신당이 세워지고, 10년 후에 신당 옆에 백령찻집이 생겼다. 백령신당은 연인들의 인연을 이어준다는 속설에 청춘남녀들이 꼭 한번 둘러보는 곳이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백령제가 올해는 4월 1일 날을 잡았다. 차량 내비게이션에는 백령찻집이 백년찻집, 백담사로 입력되어 있다.

△ 맛

백령찻집의 주 메뉴는 8가지 약초를 우려 만든 '백령차'다. 감초, 구기자 등의 약초를 하루 동안 달여서 만든 주인장의 전매특허다.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5년간 실험 끝에 익힌 방법이라 며느리에게도 비밀인 기술이다. 물론 창원 동읍이나 다른 시·도에 있는 백년찻집과도 맛이 다르다. 칡뿌리 향이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다. 차의 색감은 건강차란 느낌이 들도록 한약을 달인 듯 진하게 우러 나오지만, 맛은 한약의 쓴맛과 거리가 멀다. 헤이즐넛 커피처럼 맛이 아닌 향으로 마시는 차다.

백령차를 담고 있는 '백령찻집' 주인장 강진구 씨.
△ 볼거리


백령찻집의 볼거리는 초로 만든 촛대다. 촛농이 흘러내려 산처럼 쌓인 것이 18년째다. 어느 정도 쌓일 때 8분 능선을 잘라주지 않았다면 지금은 천장을 뚫었을 것이라는 주인의 이야기처럼 18년간 흘러내린 빨주노초 형형색색의 촛대는 백령찻집만의 매력이다. 창문에 세워진 5~6개의 촛대는 서로 이어져 금강산을 닮았다. 손님의 요청이 있으면 주인장의 불 '쇼'가 벌어진다. 초를 이용해 쉽게 꺼지지 않는 심지를 만들어 나무에 불을 지피는 방법인데, 산 속에서 고립되었을 때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생활의 기술인 셈이다. 055-221-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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