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리→복싱건탕'으로 불러주세요

1900년대 초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드에서 미국의 간식 매점업자 해리 스티븐스의 행상인들은 "레드 핫 닥스훈트 소시지 사려! 레드 핫 닥스훈트 소시지 있어요!"라고 외치고 다니며 '프랑크 소시지'를 팔고 있었다.

1906년 어느 여름날, 허스트 신문의 만화가 토머스 알로이시우스 도건은 야구장을 찾았다가 소시지 행상을 발견하고 마치 허리를 굽힌 개처럼 구부러진 모습과 행상인의 짖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진짜 닥스훈트 개가 겨자를 뒤집어쓰고 샌드위치 빵에 들어가 있는 희한한 모습의 만화를 그리게 되고, 이 만화를 손보는 과정에서 만화 밑에 '핫도그 사려!'라고 써 버렸다. 그 이후 이 레드 핫 닥스훈트 소시지는 '핫 도그'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더 황당한 것은 중국에서는 이 '핫 도그'를 '열구(熱狗)', 즉 '뜨거운 개'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이런 아이러니한 일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김치 삼합'이라 불려야 마땅한 음식이 '보쌈김치'로 불리고, 북한에서 '농마국수' 또는 '회 비빔국수'로 불리는 면 음식이 남한에서는 '함흥냉면'으로 불리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북한식으로 '농마국수', '회 비빔국수'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정도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잘못 불리게 된 음식명이 관용화 되어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뿐인가. 더 어이없는 것은 '복 맑은 탕'이 '복 지리'로 불리며, 국물을 맑게 끓이는 생선국 대부분을 거의 '지리'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쌈김치', '함흥냉면', '지리'가 왜 잘못된 음식 이름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국어사전에 기록된 '보쌈김치'에 대한 내용은 "보쌈김치는 배추 잎사귀로 휘감아서 담근 통배추 김치, (준)쌈김치"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음식 중에 '보쌈김치'라는 음식은 없었고, 그 전신은 '개성 보 김치'다. 개성배추는 다른 지방에 비해 배추 잎이 넓어 '보(褓) 배추'라 불렸으며, 이 잎이 넓은 '보 배추' 잎 사이사이에 낙지, 북어, 전복, 굴,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느타리버섯과 고명을 싸서 독 안에 차곡차곡 넣어 봉했다가 먹을 때 통째로 꺼내어 먹었다. 이런 '개성 보 김치'를 양념과 고명을 싸지도 않고 마치 '홍어 삼합'처럼 접시에 김치, 양념, 돼지고기를 담아내, 이를 '보쌈김치'라고 부르는 것은 조리학적으로도 맞지 않는 이름이다.

또 전분 국수를 비빔 하는 것을 우리는 '함흥식 냉면'이라고 부른다. 함흥에는 두 가지의 유명한 면요리가 있다. 하나는 전분 국수를 육수에 말아 먹는 '농마국수'가 있고, 국수를 비벼 가자미회를 얹은 '회국수'가 있다. 이 함흥식 '농마국수'와 '회국수'가 6·25 전쟁 당시 남한에 내려와 평양냉면의 명성에 편승해 함흥냉면으로 둔갑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평양냉면'과 '진주 냉면' 외에는 냉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1994년 1월25일 북한과학백과사전 종합출판사에서 발행된 <조선의 민속전통: 식생활풍습 편>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 냉면이다." 같은 책에 '함흥냉면'은 '함흥 회국수'로 나온다. 만약 함흥 비빔면이 냉면이라면 춘천 막국수도 '춘천 비빔냉면'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냉면이란 차가운 육수에 메밀 면을 말아 먹는 것이지 면을 비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리(ちり)'는 냄비 요리의 하나를 지칭하는 일본말이다. '즙(汁)'의 일본식 발음인 '지루(じる)'가 변해 '지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물을 맑게 끓이는 복국이 일본 음식일까? 오히려 일본은 복국의 국물을 먹지 않지만 우리는 조선 초기 세종임금이 복국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600년경 정재륜(鄭載崙)이 쓴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에 보면 "인조(仁祖)도 복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809년 빙허각의 가정백과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복국 끓이는 비법이 나온다. 그러니 맑게 끓이는 복국은 '복지리(ちり)'라고 부를 일은 아닐 것이다. 국립 국어원에서도 '복지리' 대신 '복국'이나 '복싱건탕'으로 부를 것을 권하고 있다. '복국'은 다소 어색하지만 '싱건탕'은 '싱거운 탕'의 준말로, 매운탕에 대립하는 개념이므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만 '복 맑은 탕'이라 부르고 한문으로 표기할 때는 '복백탕(鰒白湯)'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일반화된 음식 이름을 가지고 인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항변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음식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은 음식 이름의 왜곡은 우리 스스로는 물론 후손들에게 저급한 식생활 문화를 이어가게 한다.

'보쌈김치'나 '비빔냉면'은 조리학적으로나 음식문화사적으로 결코 어울리는 말이 아니며, '복지리'는 외래어로 우리 고유음식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하는 문화적 폐해를 가져다주는 이름으로 빨리 우리말로 바꿔야 할 것이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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