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맛 다이어리


경남 지역이 호남 지역보다 요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계절별로 알짜 음식이 많다. 달마다 찾아가서 한 번씩 먹어 볼만한 맛 다이어리를 꾸며봤다.

시금치(남해)
1 월


남해에서 마늘만 알고 시금치를 모른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이야기다. 한겨울에 밭에서 바닷바람을 맞고도 푸른 잎이 변색하지 않고 자라는 것만 봐도 시금치의 힘은 대단하다. 칼슘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개량 시금치보다 저장성이 뛰어나며 빈혈에도 좋다는 일반적인 약 광고식 홍보보다 뽀빠이가 먹는 음식이란 해설이 더 어울린다. 일반 시금치가 이러하니 남해 시금치는 그보다 한 수 위다.

아귀(마산)
2 월


못생겨도 전혀 죄송하지 않은 물고기가 되어버린 아귀. 아귀는 그물에 걸리면 바로 바다에 텀벙 내던졌다고 해서 '물 텀벙'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이제는 '앗싸 가오리'란 소리가 나올만하다. 12월과 1월에 주로 잡히기 때문에 2월에는 말린 것과 말리지 않은 싱싱한 아귀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찜이 대표적이지만 다양하게 즐기려면 내장수육과 불고기 요리도 무난하다.

도다리 쑥국(통영)
3 월


통영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도다리 쑥국으로 판별한다. 도다리 쑥국은 맛 집마다 하나씩은 비밀스럽게 감추는 비장의 재료 따위는 애당초 필요 없는 요리다. 봄기운을 머금은 도다리와 해쑥이 전부다. 그래도 전국에서 코를 킁킁대며 달려오는 식도락가들이 아침 통영 서호시장을 가득 채운다.

녹차(하동)
4 월


경남 하동 차를 전남 보성 차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원에서 마시는 차와 티백의 맛만큼의 차이라고만 일러두자. 지리산 골짜기 화개천 주변 바위틈에서 자란 야생 차나무는 대량생산이 힘들다. 하동에선 곡우(4월 10일) 앞뒤부터 차를 만든다. 무쇠 솥 아궁이 불로 차를 덖는 다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차 시배지(첫 재배지)' 일원에서 5월 중순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리면 운에 따라 천 년 묵은 차나무의 차 맛을 볼 수도 있다.

죽방렴 멸치(남해)
5 월


가장 원시적인 어로 방법인 죽방렴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이것만큼 안전하게 멸치를 잡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멸치를 잡는다는 말은 비늘 하나 다치지 않고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말이다. 통나무 수로를 만들어 심한 물살에 의해서 멸치를 죽방으로 몰아 살아있는 상태에서 뜰채로 뜨니 그야말로 '순결한' 멸치인 셈이다. 비싼 것이 흠이지만 대량으로 살 생각이 아니라면 창선교 근처 식당에서 죽방렴 멸치회를 2만 원 정도에 맛볼 수 있다.

멍게(거제)
6 월


우렁쉥이라 부르는 멍게는 거무튀튀한 자연산 '돌 멍게'와 울긋불긋 화려한 양식산 '꽃 멍게'가 있다. 돌 멍게는 6월이 제철이다. 특히 돌 멍게는 양이 적어 부산, 통영, 거제 같은 남해안 지역 아니면 맛보기 어려워서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먹으려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또 돌 멍게를 반으로 자른 껍데기는 소주잔으로 안성맞춤이다. 거제에 갑자기 늘어난 멍게비빔밥 집이 인기를 말해준다.

은어(하동)
7 월


은어는 일급수 강바닥에서 돌에 붙은 물이끼만 먹고산다. 순수 결정체라 할만하다. 생선 비린내가 없고 수박 냄새가 난다. 수박향이 거의 없다면 사료를 먹인 양식 은어다. 버들잎 피는 4월, 남해에서 섬진강으로 올라온 은어는 5~6월 동안 살을 찌우고 버들잎이 시들해지는 9월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원래 경북 봉화까지 올라가야 할 은어지만 섬진강 곳곳에 놓인 댐으로 은어가 이동을 멈춘 덕분에 하동에서 은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화개장터 근처에 은어 가게가 줄지어 있다.

냉면(진주)
8 월


북한에서도 북에서는 평양냉면, 남에서는 진주 냉면이 제일이라고 했으니 진주 냉면은 대동강 이남에서 최고라고 자부해도 좋을 듯싶다. 진주 냉면은 연중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냉면의 진가를 알기 어렵다. 사골로 만든 일반적 육수보다 죽방멸치, 바지락, 홍합, 명태 등으로 국물을 우려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당긴다. 고기 맛은 고명으로 얹은 쇠고기 편육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전어(사천·남해·마산)
9 월

가을 별미의 대명사인 전어를 실패하지 않고 먹는 방법은 횟집의 수족관 속 전어 상태를 확인하고 먹는 방법이다. 가을 전어는 눈으로 봐도 확연히 비늘에 기름이 오를 대로 올라있다. 국내 전 해역에서 전어가 올라오지만 도매상들은 남해안 전어를 최고로 친다. 그중 경남 사천, 남해 전어가 조금 더 맛난다고 한다.
갈치(김해)
10 월


가을이 시작되면 남해안 강태공은 엉덩이가 들썩인다. 갈치를 잡기 위해서다. 잔챙이만 잡히던 8월을 지나 9월을 넘기면서 몸통 너비가 손가락 세 개 전후에 이르는 씨알 좋은 갈치를 만날 수 있다. 이때 김해에 가면 갈치탕, 갈치구이 등 갈치로 만든 별의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굴 (통영·거제)
11 월


굴을 '바다의 우유'라고 표현하면 섭섭하다. 강력한 정력제로 알려진 굴을 언제나 맛볼 수 있는 우유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굴에겐 '굴욕'이다. 굴에 들어 있는 글리코겐은 모든 에너지의 원천으로, 굴에 함유된 아연(Zn)은 성호르몬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굴밥 등 대부분 굴 요리는 통영이 유명하지만 '굴구이'만큼은 거제로 가서 먹어보는 것도 좋다. 통영 굴보다 3~5배 정도로 큰 굴을 쪄서 먹는 굴구이는 거제가 원조다.

복어(마산)
12 월


겨울에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소주가 당긴다. 속을 푸는데 복엇국 만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마산 복요리집 골목은 겨울이면 아무 이유 없이 회귀하는 술꾼들의 마지막 종착지다. 비틀거리며 갈지(之) 자로 들어온 손님도 나갈 때는 십일 자로 걸어나간다는 복어의 마술은 그 독만큼이나 강력하다. 그 시원한 해장을 느끼고 싶어서 술을 잔뜩 들이켜는 이들이 많다는 소문은 믿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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