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자'던 당선자, 결국 반대 목소리 일축…투기 경제 서막 알려

지난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 당선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주말 수에즈 운하에서의 대형유조선 좌초 보도를 접했습니다. 이명박 당선자께서는 인수위 구상에 들어갔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그리고, '대운하 특별법'이 추진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또 대선 이후 정치인들이 태안 사태 현장에서 밀물처럼 빠져나갔다는 <오마이뉴스>의 보도기사도 보았습니다. 이 네 개의 보도를 접하면서 착잡했습니다. 네 개의 퍼즐조각을 꿰맞추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장밋빛 청사진 경부운하의 비극적 미래도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런 보도를 접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대선 막바지 TV 선거유세에서 '지난 50년동안 한번도 운하에서 기름 유출사고가 없었다'고 강변한 이 당선자께서 수에즈 운하 사고를 접했는지, 만약 보좌진으로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제2의 태안 사태'가 단지 먼나라 얘기일까요?

둘째는 당선 직후 청계광장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한 인상적인 연설이 떠올랐습니다. 이 당선자는 겸손을 잃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파들을 향해 하나가 되자고 역설했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하나가 되자는 것인지요. 경부운하에 대해 그토록 많은 저항에 부딪쳤는데, 그래서 대선 막바지까지 '경부운하' 명칭조차 바꿀지 고민했는데, 그리고 결국 공약집 구석에 처박아놨는데, 취임 일성이 사실상 그 반대파들의 우려의 목소리를 모조리 무시해버리는 '대운하 특별법' 추진이라니요?

결국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겠다는 뜻이겠지요. 운하가 건설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투기 부동산 세포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환호성을 질렀던 개발업자들도 생명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의 강바닥을 파헤치기 위해 연장에 기름칠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력한 불도저 엔진을 단 투기적 카지노 경제의 서막. 이 당선자께서는 이런 상황에 흡족해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3일 경부운하 공약 철회를 촉구하는 사회인사 2500인 선언식에 학계·종교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지관 스님이 선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경부운하에 한정해 볼 때 이 당선자는 '소수'입니다. 대선 전 여러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고, 그간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압도적인 표를 얻었으면서도 왜 경부운하 공약과 관련해서 이 당선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었는지. 저는 이제부터 네티즌과 함께 그 이유를 찾아서 정리하려 합니다. '경부운하 곡학아세 6적' 기획기사. 우선 제가 상정하고 있는 6가지 카테고리는 거짓말, 말바꾸기, 우격다짐, 부풀리기, 축소왜곡, 묵묵부답 등입니다. 이 당선자를 비롯한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그간 행해온 언행의 유형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거짓말 = 가령 이 당선자는 대선 직전 TV 유세에서 "지난 50년간 운하에서의 기름유출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운하의 나라인 유럽 등지에서 운하에서의 선박사고가 빈발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는 운하에서의 기름유출량까지도 조사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당선자의 주장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거짓말'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수에즈 운하 사고도 있지 않습니까.

또 이 당선자는 당내에서조차 '경부운하 공약폐기론'이 제기되자, 지난 9월 28일 한 방송사에서의 정강정책 연설을 통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국내외 세계적인 전문 기술자들과 환경 전문가들로 하여금 치밀하게 다듬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검토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인 셈입니다.

하지만, 당선되자마자 경부운하 공약은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경부운하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입니다.

◇말바꾸기 = 경부운하 예정지인 한강과 낙동강이 국민 3분의2의 식수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수질악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이중수로'를 제안했다가 폐기했습니다. 대표적인 경부운하 찬성론자 중에는 과거 '준설을 해도 수질 개선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가 그 반대로 말을 바꿨고, 또다른 학자는 배가 553km를 통과하는 데 1주일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가, 지금은 24시간만에 갈 수 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우격다짐 = 대표적인 사례는 '바이칼호'와 '천지 못'을 운하의 물과 비교한 것입니다. 경부운하 찬성론자 중의 한명인 박석순 교수는 '고인 물은 썩는다'는 논리를 비토하려고 "수천 년동안 갇혀있는 바이칼호의 물은 깨끗하다"고 주장했고, 이 당선자조차도 "천지 못은 갇혀있는 데 깨끗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운하의 물과 천혜의 자연을 유지한 곳을 단순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 우격다짐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부풀리기 = 골재를 팔아 8조 원을 벌겠다는 주장이 전형적입니다. 이를 위해 통계수치도 임의로 해석했습니다. 이 당선자는 대선에서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자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해외에 골재를 팔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기조차 했습니다. 또 이 당선자는 경부운하를 통해 물류혁명을 이루겠다고 강변해왔으나, 찬성론자들이 내놓는 물동량을 계산하면 하루에 5000톤급 배 6척이면 감당할 수 있는 물동량입니다. 배 6척 띄워 물류혁명을 이루겠다는 주장 역시 '부풀리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가 다니면 스크루를 통한 폭기 작용으로 물이 좋아질 수 있다는 황당 주장도 있습니다. 하루에 6척의 배를 띄워놓고 스크루를 통해 물속에 공기를 주입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면, 우리나라 모든 다목적 댐에 배를 왕창 띄워놓으면 어떨까요.

◇축소·왜곡 = 심각한 지경입니다. 우선 교량 철거 비용 축소. 찬성론자들은 한강과 낙동강에 있는 교량 120여개 중 11개의 기존 교량만을 철거하고 재가설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교량 재가설 비용은 총 공사비 14조원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창근 관동대 교수는 적어도 80개 교량을 교체해야 하고 한 개당 1000억 원씩 계산하면 총 8조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백보 양보해 찬성론자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교량 재가설 비용은 1조 1000억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찬성론자들이 내놓은 개략 공사비에는 이 항목 자체가 없습니다.

제방도 문제입니다. 네덜란드의 운하 컨설팅 업체인 DHV사는 지난해 한반도대운하연구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제방 건설 구간이 1000km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553km의 경부운하 양안을 제방으로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찬성론자들은 그들의 주장까지도 부인합니다. "500km는 자연형 하천구간이고, 인공구간은 40km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자신들이 초청한 사람의 얘기조차 부인하는 이유는 공사비 때문입니다. 참고로 찬성론자들은 제방보강 공사비 등으로 6000억 원, 박창근 교수는 4조 8000억 원입니다.

◇묵묵부답 = 마지막으로 찬성론자들의 공통된 행태는 '묵묵부답'.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에 열거된 반박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우격다짐으로 자신들의 주장만 늘어 놓고 잘못을 인정하는 솔직함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1년간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6가지 잘못된 행태입니다. 경부운하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찬성론자들이 동원해 온 수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여기저기서 '진보는 죽었다'는 곡소리만 들려오는데, 진검승부는 이제부터입니다. 미래지향적 경제 가치와 지속가능한 환경 가치를 지키는 싸움. 그래서 저는 즐겁게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오마이뉴스/김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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