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마음이 맛 낸 그 국밥

   
 
 
"오늘은 김치 국밥 먹을까. 아, 맛있겠다. 그자."

"엄마, 어제도 김치 국밥 먹었는데…."

"엄마가 맛있게 해줄게. 좀만 기다려봐라."

아버지는 빚을 갚으려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떠나셨을 때다. 내가 9살이 됐을 무렵, 1년간 엄마는 아빠를 생각하며 이 악물고 아껴보고자 했단다. 먹고 싶은 것은 참고 아파도 견뎌야 했던 때였다고 엄마는 회상하시곤 했다.

그맘때 한겨울,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바로 김치 국밥이었다. 엄마는 부엌에 나설 때 마치 군대 훈련병과 같았다. 동생과 나를 그나마 가장 따듯한 아랫목에 앉히고는 두꺼운 겨울 이불을 푹 덮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두꺼운 목양말, 목도리, 조끼로 무장하고 조금만 기다리라며 총총걸음으로 부엌으로 나섰다.

30여 분이 지나 엄마는 우리가 덮어쓴 이불 앞까지 상을 들여놓으셨다. 시커멓게 밑동이 타오른 양은 냄비와 김치 반찬, 그리고 숟가락 셋. 추위에 떨며 음식 냄새를 맡아서인지 배가 더 고파 왔다. 또 김치 국밥이냐며 투정부릴 땐 언제였을까. 엄마, 나, 동생 이렇게 셋은 머리를 맞대고 밑바탕에 깔린 빨간 누룽지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둘째를 가지고 한창 입덧이 심하던 지난 12월 초. 갑자기 그때 먹던 김치 국밥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큰일 났네. 꼭 그 김치 국밥이어야 하는데. 국물이 넉넉하게 있으면서도 밥알이 푹 익어 약간 걸쭉하게. 그리고 냄비 밑동에는 누룽지가 약간 생겨야 하는데. 김치는 물컹물컹 할 정도로 푹 익혀야 하고. 그리고…."

"김치 국밥, 그까짓 거" 하며 부엌으로 나선 남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어떻게 만들든지 좋은 소리 못들을 거라는 표정이다. 단단히 다짐한 듯 "알았다" 한마디만 남기고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서 '이게 아닌데'라는 말이 서너 번 나오더니 1시간가량 지나 작은 상이 들어왔다.

"진짜, 이거, 이야. 한번 먹어봐. 니가 말하던 바로 그 맛이다. 잠시만, 계란 하나 터트려야지."

참 맛있게 먹었다. 물론 내가 원하던 맛은 아니었다. 해준 사람이 다르고 시절이 다른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어릴 때 먹던 누룽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돼지국밥…. 국내 내로라하는 미식가들이 그 화려한 음식을 다 제쳐 두고 하루를 꼬박 고민하며 소박한 이 음식들을 꼽았던 이유를 알겠다. 영화 <식객>에서는 배고픈 시절 엄마가 해 주시던 군고구마와 군대에서 쫄쫄 곤 배를 잡고 먹었던 라면, 흔하디 흔한 육개장이 생애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알겠다.

내게 생애 최고의 음식을 꼽으라면 은근한 추억과, 건네는 이의 마음이 뚝배기가 되어 음식의 맛을 돋운 이 두 김치 국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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