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여성 상대 각종 강력범죄 잇따라…자위책 마련해야

동대문패션타운에서 의상디자인을 하고 있는 이수진(여·31·가명) 씨는 얼마 전 가슴 철렁한 경험을 했다.

이씨는 일을 마치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회식을 했다. 오랜만에 하는 회식자리였기 때문일까.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저녁식사만 하기로 한 약속은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회식을 마친 뒤 이씨는 택시를 잡아탔다. 집으로 가던 중 택시기사는 평소 이씨가 익숙한 길이 아닌 으슥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지름길로 가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이씨는 순간 당황하고 겁부터 났다.

이때부터 이씨는 집으로 도착할 때까지 핸드폰을 들고 친구와 통화를 해야만 했다.

2007년 한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연말연시가 되면 저물어가는 한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한해를 즐겁게 맞이하자는 의미로 송년회등 많은 회식자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회식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늦은 밤 귀갓길이 요즘 그리 안전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늦은 귀갓길 여성들 "불안해"

최근 여성들을 상대로 한 흉악한 강력범죄들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여성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31일 홍익대 앞에서 여성 회사원 2명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택시기사에 납치돼 금품을 빼앗기고 살해됐으며, 9월에는 현직 경찰관이 밤늦은 시각 지하철 환승 주차장에서 여성 2명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2000여만의 금품을 빼앗은 사건도 있었다.

또 부산에서는 10월께 택시기사가 자신의 택시에 만취상태로 승차한 20대 여성을 강제추행했고, 휴가를 나온 군인이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귀갓길 여성을 뒤따라가 목을 조른 뒤 핸드백을 뺏아 달아난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최근 밤늦은 시간 귀갓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가 이어지면서 연말연시 회식자리가 많은 여성들이 '혹시 내가 강력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씨는 "요즘에는 하도 세상이 무섭다고 하니까 괜히 시간이 늦어지면 겁이 나고 초조해 진다"며 "그렇다고 사회생활하면서 회식을 안 할 수도 없고 해서 호신용 스프레이까지 구입했다"고 말했다.

◇여성대상 범죄 증가추세

경찰청에 따르면 여성들이 사회활동이 많아지면서 전체범죄 중 여성대상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2년 16.0%, 2003년 16.7%, 2004년 17.7%, 2005년 16.7%, 2006년 19.8%로 나타나는 등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또 지난해 발생한 살인.성폭행.강도 등 강력범죄 1만6397건 중에서 밤 12시부터 새벽 4시 사이 발생한 사건이 무려 5274건(32.2%)으로 조사됐다.

이어 △오후 8시~밤 12시 3489건(21.3%) △낮 12시~오후 6시 2288건(24.0%) △새벽 4시~오전 7시 2482건(15.1%) △오전 7시~낮 12시 1774건(10.8%) △오후 6시~오후 8시 1090건(6.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중에서도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 '여성 치안 위험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올해 'OECD 보건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타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7명으로 미국(2.7명), 아이슬란드(2.2명)에 이어 3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여성들이 타깃(Target)인가?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자기방어 능력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연시가 되면 직장여성들을 상대로 강력범죄가 많아지는 것은 여자와 청소년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표창원 경찰대학교 교수는 "강력범죄란 상해를 수반한 것을 뜻한다"며 "남성에게는 저항력이 있어 상대적으로 범행이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범행이 쉽다고 생각해 표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들도 남성과 다름없이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카드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금을 소지하지 않더라도 협박 등을 통해 비밀번호를 알아내면 범인들이 큰 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육체적으로 약자이면서 많은 수요(돈)를 얻을 수 있는 상대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범행대상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여성들 스스로 안전장치 만들어야

우리나라가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범죄예방 안전장치들이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을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밤거리가 아직도 어두운 편이고, 여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들인 CCTV, 경찰과 자율방범활동, 대중교통수단의 안전성 확보 등이 부족해 여성들의 밤길은 아직도 불안하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늦은 귀갓길의 여성들 스스로가 주의를 기울이고, 안전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회식 후 늦은 귀갓길에는 택시를 타기가 두려울 경우 남편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운전기사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게 말을 해야 한다"며 "이런 경우 술이 취했다고 하더라도 전화로 말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안전을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표 교수도 "밤늦게 귀가할 상황이라면 위치와 교통수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족들에게 미리 전화로 알려줘야 한다"며 "기사가 들을 수 있도록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면 상대방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걸어서 집으로 갈 경우 어두운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면 즉시 전화를 꺼내 가족 중 성인 남성과 통화를 해야 하고, 24시간 편의점이나 지구대, 약국, 등 안전시설이 있는 경로를 미리 파악해 그쪽 경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한 범죄를 그들 스스로가 자구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범행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측으로 일부 전가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어, 안전한 귀갓길을 위한 치안 시스템의 구축도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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