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는 지금부터 1500년전 중국 북위(北魏)의 수도 낙양을 무대로 양현지가 쓴 책이다. 북위는 중국 역사의 주류로 군림해 온 한족이 아닌 호족(오랑캐)이 중국의 화북지방을 점령해 세운 왕조다. 당시 수도인 낙양에만 무려 1367개의 절이 있었고, 중국 조각의 백미로 꼽히는 운강(雲崗)·용문(龍門)석굴도 이 때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당시 북위 사람들, 즉 황제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불교에 심취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낙양가람기>는 <제민요술(齊民要術)> <수경주(水經注)>와 더불어 북위 삼대 걸작중 하나로 손꼽히며 오랫동안 동양사·미술사·건축사·불교사· 중국문학· 동서문학교류사 등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텍스트로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국내에 제대로된 번역서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단순한 사찰의 기록이 아닌 정치· 경제·사회·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동기가 된다. 더구나 중국역사와 관련한 방대한 한자용어· 불교용어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상세히 풀어놓은 주해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지은이 양현지(楊衒之)는 북평사람으로 생몰년·가계·행적 등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단 그가 서문에 밝힌 ‘폐허가 된 낙양을 보고 이 곳의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 것이 두려워 글로 남긴다’는 내용을 보면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록에 무척 신경썼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크게 세가지다. 역사서술의 객관성과 불사, 그리고 노장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이다. 역사서술의 객관성이란 지금까지의 사관기록과 달리함을 말한다. 그는 승자의 논리로 취사선택된 역사서술을 비판하면서 화려한 불사가 건립된 북위왕조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일어났던 사실들을 그대로 적겠다는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불사에 관한 것이다. 본문엔 탑·불상·사원 등이 화려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가 담고 있는 원래의 뜻은 화려함 뒤에 감춰진 백성들의 고통이다. 나라의 재앙을 초래하는 지배계급의 부패와 타락이다. 5호16국으로 분열되어 장기간의 혼란시대를 거치면서 백성들은 궁핍해졌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나 황실과 왕공들은 백성을 돌보기보다 오히려 불사 건립에 힘을 쏟았던 것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불탑과 석불은 곧 백성들의 피와 땀임을 양현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장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조일(趙逸)이라는 은자(隱者)를 등장시킨다든지, 자연에 귀의하는 즐거움을 말한다든지, 휘황찬란했던 낙양이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것이었다.



책은 크게 서(序)를 포함해 총 5권으로 이뤄졌다. 낙양성 안쪽에서 시작해 성동(城東)·성남(城南)·성서(城西)·성북(城北)의 순으로 되어있고, 각 권은 각 지역의 대표적인 절을 소개하며 절의 명칭· 세운 사람·위치·부근의 건물과 풍경·절에 대한 설명·절과 관련된 인물과 역사적 사실·전해지는 이야기 등을 싣고 있다. 인도 불교를 탈피하고 중국의 독자적인 불교가 확립되기 시작하는 북위 불교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첫번째로 등장하는 영녕사(永寧寺)는 우리나라 절의 일반적인 가람배치의 교본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찰의 중앙부에 9층 목탑이 있고 북쪽에 불전을 두어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상경이라는 사람은 영녕사에 대해 이렇게 비문에 적고 있다. ‘수미산의 보배로운 불전이나 도솔천의 정결한 궁전도 이 절만큼 화려하거나 장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대 제일의 솜씨라는 말이다. 다만 사찰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사진으로 대할 수 없음이 아쉽다. 양현지 지음. 서윤희 옮김. 226쪽. 눌와.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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