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 정말 뜨겁다. 머리가 화끈거리도록 뜨겁다. 7월의 태양이 뜨겁고,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사람들의 열변이 뜨겁다. 다들 제 나름의 생각을 풀어내는 말과 글이 홍수를 이룬다. 이 홍수는 너무나 뜨거워서 자칫 휩쓸리기라도 하면 살아 남기는 커녕 폭삭 익어서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16일 천주교(정확히 말하면 ‘정의구현사제단’)가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 홍수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니나다를까, 여기저기서 천주교의 성명 발표가 옳다 그르다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진다. 천주교가 눈치 없이 민감한 사안에 끼어 든 것인지, 아니면 적절한 때에 해야할 말을 한 것인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그것은 천주교 내에서조차 이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16일의 성명서 발표가 있기 전 10일과 12일에 세무조사에 가장 반발하는 한 일간지에 천주교 신자임을 밝힌 독자가 투고를 하였다. 대략 ‘천주교가 반미.친북적이고, 정치사안에 너무 나선다’,‘종교는 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친북 색채가 짙은 성명에 단골로 들어가시는 추기경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독자는 ‘이래서야 어떻게 천주교가 사회 정화에 보탬이 되겠는가’라며 분노에 가까운 말로 글을 끝맺는다. 이 독자투고는 논쟁거리로 떠올랐고, 한 인터넷 신문에 기사화 되었다. 물론 독자투고에 대한 비판의 글이었다. 기사 말미에 ‘만일 천주교가 법적 대응을 한다면 한국에도 새로운 판례가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다.’라며 천주교가 신문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하도록 조심스럽지만 강경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천주교 신자라고 밝힌 익명의 자매였다. 왜 천주교 신부들이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현 정권 편을 드느냐는 것이었다. 30분 간 전화통을 붙들고 신앙과 성서, 언론 자유에 대하여 토론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부님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솔직한 내 심정도 그랬다. 그러나 차마 신부가 먼저 그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꾹 참고 있었다. 왜 말이 통하지 않는 걸까.
천주교회는 2000년을 지내오면서 희한한 일을 많이 당하였다. 종교의 분열(개혁.)도 여러 차례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권력과 결탁하였다가 혁명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종교내부의 부패로 인해 처절한 자기 반성을 해야만 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을 이어 오며 아직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천주교회의 말을 빌리면 ‘성령’의 이끄심 때문이고,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깊이 때문이다.
수많은 신자들은 수많은 직업을 가지고 살고, 교회는 수많은 직업의 신자들을 만나야한다. 수많은 신자들이란 수많은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교회는 이렇게 수많은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려하지 않는다. 한사람 한사람이 가진 모든 생각이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의 생각이 귀하다 할지라도,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마태5. 37)”하라는 성서의 말씀을 따라 ‘아니오’ 해야 할 때가 오면 ‘아니오’해야 한다. 신부가 정치사안에 너무 나선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번 세무 조사가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것은 분명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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