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한답시고 하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정치는 분명한 현실인데 그들이 뱉는 말은 가상 시나리오를 보고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거꾸로 그들은 현실은 외면한 채 매사 놀음에 한창이다. 누군가 운을 떼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상대방의 말 중에 흠잡을게 없을까, 그리고 어떤 틈이 발견되면 ‘옳거니!’를 연발하며 공격성 언어유희를 총동원한다.
기득권에 목 메다는 세태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달변가이자 언어마술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옛날처럼 거짓말만 잘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세상 민심이야 어떻게 돌아가던 알 바가 아니다. 인기영합이라는 자기최면으로부터 최대한의 영웅화를 모색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무리 때문에 국론은 찢어지고 사람간의 갈등이 자꾸만 깊어지고 있는 줄을 모른다.
늘 그래왔지만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정쟁 정국은 혼탁의 극치 이상이다. 옛날에는 그런대로 공격과 방어 그리고 반격의 수순이 납득될만한 객관성을 갖고 있었다. 여당이 물리력을 배경으로 한 무리수를 감행하면 야당이 제동을 거는 그런 정규적인 코스를 따라갔다. 그러나 이제는 뭐가 뭔지를 감 잡을 수가 없다.
한발 물러나서 그 원인을 골똘하게 유추한다. 겨우 윤곽이 잡힌다. 그들 사이에 언론이 딱정벌레처럼 끼어 들어있다. 대리전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지만 정말 가당치 않은 말이다.
한 신문이 기관지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 일당의 편을 들어서는 안되고 정당 역시 특정신문과 한 통속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도 엄연히 그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혼돈과 가치관의 붕괴가 여기에서 발원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독자층의 절대다수를 자랑하는 중앙 3개 일간지는 그 논지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세무조사가 언론 탄압용으로 위장됐다고 야당주장을 어필시키면 독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논리동조 쪽으로 정서이동이 된다. 김정일위원장 답장을 위해 보수언론을 정지작업하려 한다는 모 중진의원의 소위 ‘색깔론’도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독자나 국민들의 가슴에 막연한 의구심을 심어 준다. 그러다 그같은 일이 계속되면 정말 그럴 것이라고 믿게 된다.
기득권이란 그 속성이 마약과 같은 것이다. 힘들게 쌓아 온 부와 권세는 개인과 집단을 취하게 만든다. 누가 건드리면 무조건적인 방어본능이 튀어나오게 돼있다. 지금까지 세금분야에서 성역화되다시피한 언론사들로서는 국세청의 법집행에 결사적인 저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몸부림이 맞물려 헌정이래 버금가는 모델을 찾기 어려운 정쟁 정국과 사회정치적 혼란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세무조사와 사주고발을 둘러싸고 만들어 낸 신조어나 이념공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말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데꺽데떡 주워 올리는 순발력은 당차고 야멸차다. 양보와 이해의 미덕은 조금도 없다. 본질은 이미 언덕을 넘어가 버렸다. 명분에 얽매인 정치싸움과 대권 논리만이 판을 친다. 언론을 볼모로 잡은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총체적 불안심리는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간다.
겸허한 자기반성 있어야
국면을 반전시킬 묘약은 없는가. 국민들에게 올바르고 정당한 비전을 제시할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가. 있을 것이다. 열쇠는 원인제공자, 즉 언론이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법을 어긴 행위에 대해서는 시비가 분명해야 된다는데 동감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언론 길들이기식 권력남용이어서는 안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런데 왜 자신의 허물은 감추고 실체가 잡히지 않는 가상 적을 향하여 돌진 일변도인가.
먼저 겸허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이나 단체나 완벽한 것은 없는 법이다. 잘못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털어 놓고 양해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이는 언론과 정치권의 이해다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언론과 독자, 나아가서는 국민과의 신뢰회복이 해결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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