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부푼 희망을 안고 출범한 새 천년이 이제 달력 한 장밖에 남지 않았건만 노동자와 농민들은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하여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장 오늘 한국전력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고, 양대 노총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부분 파업 등 공동행동을 벌이기로 예정되어 있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노동계의 예고대로 총파업 투쟁이 여타 공공부문에 더하여 건설·금속·사무금융 등 산별노련 차원으로 확산되면 그 파란은 엄청날 것이다. 농민들도 지난 21일 대규모 시위에 이어 다음달 2일 경북에서 다시 농민대회를 열기로 하는 등 향후 투쟁을 준비하고 있어 언제 다시 그 불씨가 타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렇듯 상황이 심각할수록 한편으로 단순화시켜 보면 오히려 해결책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양대 노총은 구조조정 정책이 민주적 절차나 합리적 기준 없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기에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를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농민들은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경쟁력 우선의 농정이 결국 농촌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농민을 빚더미에 앉게 만들었다며 부채탕감과 농산물 가격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경우 오히려 경제위기가 가중될 위험이 있다며 내년 2월까지 목표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우선 그 요구가 지나칠 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상황을 엄정하게 따져볼 때 노동자·농민들의 주장이 지나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그 배경과 동기에 대하여 진지한 이해를 구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공기업 구조조정이 그간의 비합리적 경영구조를 개혁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낙하산 인사를 반복하여 조직의 비효율성이 증폭되는 등 이율배반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구조조정의 원칙을 새롭게 수립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농가부채의 주 원인도 그동안 농산물 가격보장 없는 투자 확대와 비민주적 농정의 결과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부채악순환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을 먼저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이든 부채탕감이든 온 국민의 뼈를 깎는 아픔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관용과 인내가 절대적이며, 그 길만이 극단적인 집단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상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